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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지용목사의 사순절 신앙고백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③예루살렘에 대하여(끝)

입력 2020-04-12 01:46:22
“비아돌로로사는 고난의 결국이 행복이 아니라 죽음임을 암시하는 좁은 길”
 
감람산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성전. 황금색 지붕이 인상적이다. 


지난 10일 성금요일을 지나고 부활주일을 하루 남긴 고난주간의 막바지다. 전통적으로 중세 가톨릭 시대에 특별한 의미를 갖고 종교적 형식으로 진행된 사순절은, 종교개혁시대를 지나 현대 시대로 접어들면서 종교적 형식보다는 신앙의 본질에 무게를 둔 ‘경건성’에 의미를 두고 진행된다. 이에 올해 초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온 이지용목사(뉴욕겟세마네교회 담임)를 통해 성지순례에서 느낀 신앙고백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를 ① 광야에 대하여 ② 갈릴리에 대하여(상)(하) ③ 예루살렘에 대하여 순으로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예수님은 갈릴리의 사역을 모두 마치시고 마지막 사역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는 예수님의 사역을 갈릴리와 예루살렘으로 구분하지만,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사역하실 동안 수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습니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예수님도 1년에 3번(초막절, 유월절, 오순절)은 예루살렘에 갔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초막절과 유월절 사이에 있는 수전절에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을 보아 예수님은 공생애기간 동안 1년에 서너 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이런 자세한 방문을 기록하기보다는 지역별로 중요한 사건을 한군데 모아 기록하였기에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예루살렘을 처음으로 방문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예수님은 이미 수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하셨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입성하신 것이 마지막이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700m 정도에 있기에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겨울에는 춥습니다. 그래서 역대 이스라엘 왕들이 그렇게 해 왔듯이 헤롯은 예루살렘보다 낮은 지역인 여리고(해발 약 –250m)에 겨울 궁전을 짓고 겨울을 났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방문하신 예루살렘의 각 지역을 살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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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장 삭개오 살던 여리고…돈 많이 거래되는 지역

△여리고지역 : “저희가 여리고에서 떠나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좇더라(마 20:29),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막 10:46)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눅 18:35)”
 
예루살렘 동산에 서 있는 필자


위 구절들을 보면, 여리고를 기준으로 한편으로는 “들어갔다”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갔다”고 씁니다. 이런 표현의 차이는 왜 있을까요? 유대인이었던 마태와 마가는 유대인이 많이 살았던 구약시대 여리고를 진정한 여리고로 인정하여 구약시대 여리고에서 서서 성경을 기록하였기에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나가다가’소경을 만났다고 적었고, 이방인 누가는 삭개오같은 소외된 사람들 입장에 서다 보니 신약시대 여리고를 기준하여 성경을 기록하여 예수님이 신약시대 여리고로 ‘들어오다가’ 소경을 만났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신약시대 여리고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이곳에서 세금을 거두는 세리들의 우두머리인 세리장 삭개오를 만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리고는 유대인들의 가장 많은 돈이 오갔던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여왕도 이 지역을 탐내어 얼마 동안 차지했던 지역입니다. 

올리브 나무 많은 감람산에 세워진 만국교회

△감람산 : 예수님 시대의 감람산은 높이가 810미터 정도 되는 언덕 산으로, 주변에는 올리브 나무가 빽빽하게 심겨져 동산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올리브유는 가장 널리 사용되던 기름으로, 유대인들은 올리브유를 식용 및 기타 여러 용도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동네나 집에 맷돌을 두고, 올리브 열매를 맷돌에 갈아 기름을 짜서 직접 사용하기도 하고 팔기도 했습니다.
 
감람산 내 겟세마네 동산에 세워진 만국교회(=겟세마네교회) 입구


감람산 입구 중앙에는 예수님이 로마 군병들의 손에 잡히시기 전까지 제자들과 함께 지내며 기도하신 겟세마네(이 뜻은 히브리 말로는 ‘갓 쉬마님’으로, ‘기름을 짜는 곳’이란 뜻이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의미)동산이 있습니다. 그곳에 겟세마네교회(만국교회)가 세워져 있었는데 1919년에 세계 16개국에서 돈을 모아 만들고 현재는 그리스정교회와 아르메니아정교회가 관리하는 ‘만국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성령 의미하는 감람산 속 겟세마네는 피땀의 기도장소

교회의 정원에는 감람산을 기념하는 의미로 여러 그루의 감람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모두 몇 백 년 이상 된 나무들입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주위의 다른 나무들보다 두 배 정도 굵은 이 나무는 수령이 2,000년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즉 이 나무는 예수님 시대 때부터 있었던 올리브 나무로 여겨집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음성을 듣고도 회개치 않는 마음이 강퍅한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을 보시고, 복음을 등진 그들이 미래에 어떠한 고난을 당할 것을 아시고 감람산에서 우셨습니다(눅 19:41). 그리고 잡히시던 날 밤에는 감람산 겟세마네에서 피땀을 흘리도록 기도하셨습니다.(눅 22:44). 이처럼 예수님이 자주 머무셨던 감람산에는 이곳저곳에 정교회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옛 집터나 고대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장소에는 ‘승천 교회’ ‘주기도문 교회’ ‘눈물 교회’ 등의 이름을 가진 정교회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감람산 내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부조상. 나무에서 기름을 짜낸다는 뜻의 겟세마네처럼,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님의 피와 땀으로 짜낸 은혜의 선물임을 나타낸다. 


구약성경에서 감람산을 언급한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구절은 스가랴 14장 4절입니다.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메시아가 오실 것에 대한 예언으로, 이 말씀대로 예수님이 오셨고, 나귀를 타고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마 21:1~5, 눅 19:28~37). 감람산 맞은편에는 옛 예루살렘 성에 황금문이 있었는데, 그 문은 메시아가 들어오는 문이라고 일컬어집니다.  

현재도 감람산 맞은편에는 예루살렘 성의 황금문이, 맞은편의 통로가 막힌 상태로 상징적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부활을 믿는 유대인들은 언젠가 감람산에 메시아가 오실 것이며, 그때 부활이 시작된다고 믿고 감람산에 묻히려고 합니다.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삼렘성으로 가신 길옆에는 수많은 무덤들이 있었는데 그곳은 아랍인들의 마을이지만 그곳에 묻히는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입니다.

△통곡의 벽 : 감람산 근처에 왔을 때 제자들은 성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습니다. 헤롯대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완성한 성전은 그 유대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었죠. 사람이 도저히 옮길 수 없는 거대한 돌과 입체감을 주며 쌓아 올린 성전 벽은 누구나 보아도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웅장했던 성전이 참담하게 무너진 후 지금은 통곡의 소리만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로마인들이 성전을 점령하고 부수고 있을 때 로마 병정들 사이에는 성전이 귀하기 때문에 돌 사이에 금을 넣고 쌓았다는 풍문이 돌아 로마 병사들이 돌을 모두 뒤집어 버리는 바람에 성전의 돌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져 버렸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통곡의 벽은 유대인의 성지이자 세계적인 관광명소입니다.

지상에 있는 부분은 상부이고 하부는 지하에 묻혔으니 가이드를 대동해서 지하도로 내려가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전쟁을 여러 차례 겪는 과정에서 예루살렘은 과거의 잔해 위에 재건되기를 반복했습니다. 때문에 현재 지하에는 과거 지상이었던 부분의 유적 등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유대인의 성지인 만큼 복장 규정을 지켜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반바지, 민소매 차림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남자는 모자를 써야 하는데, 빌려주는 곳이 있습니다. 입구에서 종이로 된 키버를 담은 상자가 있는데, 이를 쓰고 들어간 다음 나올 때 다시 상자에 두고 나오면 됩니다. 사진 촬영은 어느 정도 허용되지만, 안되는 날도 있으니 사전에 알아보길 바랍니다. 요즈음엔 남녀가 따로 입장하도록 분리대가 설치돼 있으니 당황 말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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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돌로로사(십자가의 길) : 비아 돌로로사! The Via Dolorosa!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발자취! 라틴어로 ‘고난의 길’(Way of Suffering, Way of Pain), ‘고뇌의 길’(Path of Grief) 혹은 ‘슬픔의 길’(Way of Sorrows)로 약 800m 길이의 이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속사 마지막 여정입니다. 14개의 처소로 이루어진 비아돌로로사를 함께간 성지순례 일행들과 걸으며 한 없이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신 길, 비아돌로로사. 길이가 약800m로 알려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렬하고 위대한 구속의 능력을 남긴 발자취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형 선고를 받으신 본디오 빌라도 총독 법정 장소를 확실히 알 수 없어 헤롯 대왕에 의해 건축된 안토니아 요새(Antonia Fortress)를 기점으로 하여 비아돌로로사 여정 지도가 그려졌습니다.

1. 첫 번째 처소인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선고 받으신다. 
이곳은 로마군병 숙소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안토니아 요새 자리다. 예루살렘 동편 사자문(스데반문)을 지나 약 250 미터 거리 언덕에 재판 받은 장소로 추정되는 총독 관저에 도달합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조롱과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로마군인들과 군중들에 둘러싸인 채 어제 밤에 끌려왔던 그 기드론 골짜기를 다시 내려가며 인류를 위한 구속의 대장정은 시작됩니다(마태복음 27:11-14).

2. 두 번째 처소에서 십자가를 지신다
빌라도에게 사형선고 받으신 후 실제로 십자가 등에 진 여정이 시작됩니다. 가시관을 쓰시고 로마군인들에 의해 옷은 찢깁니다. 채찍질 당하며 홍포를 입으신 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온갖 조롱을 당하십니다(마태복음 27:27-31).이곳에 십자가형 선고 및 시행령 교회(Church of the Condemnation and Imposition of the Cross)와 채찍질 교회(Church of the Flagellation)가 있으며, 길을 나서자 로마 행정관이 조롱하며 라틴 말로 외칩니다. “이 사람을 보라!”(Behold the man).

3. 세 번째 처소에서 처음으로 넘어지신다
70킬로그램에 이르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신 주님, 극도로 피곤하시어 쓰러지십니다. 이곳에 두 개의 아르메니아 교회가 있습니다.

4. 네 번째 처소에서 어머니를  만나신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처참한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 마리아는 강물처럼 흐르는 슬픈 눈물과 안타까움으로 온몸을 떨고 있습니다. 한순간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아들과 어머니의 눈이 마주칩니다. 그 눈길 가운데 인간의 가장 슬픈 모든 감정이 다 담겨 있을 것입니다.

5. 다섯 번째 처소에서 구레네 시몬을 만나 십자가 짐을 나누신다
여기서부터 골고다로 향하는 길은 가파릅니다. 험난한 십자가 여정 고통은 이제 배 이상 더해집니다. 예수님, 더 이상 앞으로 나갈 걸음을 못 떼십니다. 군중 가운데 건장한 체격을 가진 한 남자를 로마 군인이 끌고 오는데 이 사람이 구레나 시몬입니다(Simon of Cyrene).

당시 10만여 명 유대인들이 북아프리카에 살고 있었습니다. 시몬은 힘을 다해 지친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여정 그 마지막 길을 돕습니다. 하지만 십자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쓰러지면서 예수님은 벽에 손을 기대시고  예수님의 그 손 자국이 벽에 남아 있다고 전해집니다. 쓰러지시면서 벽에 손 기댄 곳에 예수님의 손 흔적이 순례객이 이곳에 도착하면 가던 길을 잠시 멈추어 이 채플 앞벽에 약간 패인 채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는 돌을 어루만집니다. 

6. 여섯 번째 처소에서 베로니카를 만나신다
이제 비아돌로로사 길은 더욱 좁아지면서 언덕을 만납니다. 베로니카는 그녀의 집 앞을 지나시는 피로 얼룩진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습니다. 로마군인의 채찍에 맞을지도 모르는 대담한 일을 행한 것이지요. 그 자상한 손길 덕분에 극도로 지친 예수님의 얼굴에 잠시 고통이 사라집니다. 베로니카는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한 여인이 주님의 옷깃을 만져 낫게 된 여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마가복음 5:25-34). 

7. 일곱 번째 처소에서 두 번째 쓰러지신다
이제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는 관문에 도착하십니다. 여기서부터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은 더욱 좁아지고 경사는 더욱 험해집니다. 이 무렵 로마군인들의 채찍질과 십자가 고통에 인간 예수님의 힘은 세상에 다 쏟아 바친 후 기진맥진 상태입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하여 예수님, 다시 쓰러지십니다. 이곳 길가에 세워진 오래된 로마 돌기둥이 예수께 묻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고 통곡한 장소에 세워진 '통곡교회'. 지붕 꼭대기 닭 모양이 특징이다. 

8. 여덟 번째 처소에서 예루살렘의 여인들을 위로하신다
성문을 떠나 몇 걸음 더 가면 갈보리 죽음이 더 가까이 눈앞에 다가옵니다. 이곳에서 고통스러운 십자가 여정을 바라보고 울면서 따르는 예루살렘의 경건한 여인들을 만납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울어라(누가복음 23:28).” 천근만근 무거운 발길 잠시 멈추신 주님, 짧고 애절한 설교를 하십니다. 이곳에 희랍 정교회 수도원이 세워집니다.

9. 아홉 번째 처소에서 세 번째 쓰러지신다
이제 굽어지고 경사진 골목길이 나옵니다. 갈수록 더해가는 십자가 무게, 더이상 견딜 힘이 없으시다. 하여 다시 쓰러지십니다. 이곳은 비아돌로로사 클라이맥스 지점이요 마지막 처소이기도 합니다. 경사진 길 꼭대기 위로 콥트 정교회가 보입니다. 왜 이곳에 에티오피아 정교회 승려들이 거주하는가? 전통에 근거, 시바 여왕의 예루살렘 방문 때 태어난 솔로몬의 아들과 시바 여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면서 에티오피아의 아스곤(Aksum, Ethiopia)으로 언약궤를 옮긴 후 지금도 보관 중이라 주장합니다.

10. 열 번째 처소에서 옷 벗김을 당하신다
이제 밖에서의 비아돌로로사 여정은 끝났습니다. 열 번째부터 열네 번째 남은 다섯 처소는 비아돌로로사 마지막 종착지 성 분묘교회당(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안에서 만납니다. 로마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는 모습을 봅니다. 마리아는 여기까지 따라와 채찍질에 찢긴 아들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며 예수님을 지켜보던 곳입니다.

11. 열 한번 째 처소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다
결국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마리아와 군중들 눈앞에서 벌어집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참하게 못 박습니다. 세상에서 정말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납니다. 인간 예수님의 그 신음과 고통 소리 그리고 사람의 몸을 나무에 못 박는 망치 쇳소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처소는 남아 있지만 무덤은 로마가 파손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밝게 빛난 변화산. 구약에서는 드보라가 전쟁에서 승리한 산이다. 다볼산으로 불린다. 

12. 열 두 번째 처소에서 운명하신다
못 박힌 예수님의 십자가, 하늘 아래 버림 당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자신의 몸무게가 스스로 자신을 고문합니다. 고통의 소리가 들립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곳을 아람어로 ‘해골’(Skull)이라 부릅니다. 십자가가 서 있었다고 추정되는 이곳은 늘 항상 순례객들로 붐빕니다. 제단 바로 아래 예수님의 초상화와 은으로 장식한 둥그런 모양의 돌 판을 보려는 사람들 행렬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순례객들은 성스러운 가슴을 부여잡은 채 엎드려 절하는 자세로 둥근 판 한 가운데 갈라진 석회암 바위 구멍을 어루만지곤 합니다. 십자가의 뿌리가 박힌 곳이요, 구세주의 피가 흐른 바위틈입니다. 아담 역시 이곳 골고다 반석 아래 묻혔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아담의 해골이 있는 곳으로 흘러 에덴에서 시작된 아담의 원죄가 사죄함을 받는 상징적 장소로 믿는 것이지요.

13. 예수님, 열세 번째 처소에서 시신으로 옮겨진다
운명하신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립니다. 이제 모든 게 끝장난 상태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주검을 만집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마지막으로 아들의 죽음을 확인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몸을 ‘도유의 반석’(The Stone of Unction)에 누이고 기름과 향유를 바릅니다. 그 역시 경건한 사람으로 예수님의 마지막 길을 위해 섬깁니다. 

순례객들은 이 반석을 만지기도 하고 입을 맞추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그 도유의 터치를 보관한다는 의도에서 기름을 묻힌 천을 문질러 가지고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과 죽은 아들 예수를 끌어안고 비통해하는 성모상 피에타(Pieta)도 여기서 만날 수 있습니다.

14. 열네 번째 처소에서 무덤에 눕히신 후 부활하신다
이제 비아돌로로사 그 여정 마지막 처소에 도달합니다. 안식일이 다가오자 예수님의 시신은 십자가에서 내려집니다. 하지만 시신이 묻힐 무덤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경건한 사람 아리마대 요셉이 등장합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그의 가족 매장지 동굴을 아낌없이 바칩니다.

바로 그곳이 지구촌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가 됩니다. 그의 이런 엄청나고 값진 희생과 사랑이 수천 년 동안 사람들 가슴을 감동시킵니다. 예수님의 무덤 자리로 추정되는 장소는 성 분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센터에 위치합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센터요(Christ the centre of the world) 지구의 배꼽(Omphalos)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번 성지순례에 함께 한 목회자 내외. 맨우측부터 함동균목사, 필자, 네번째 김남수목사.

예수님은 사흘 후 이곳 무덤에서 부활하십니다. 여기에 십자군 패망 전 헬레나가 발견하였다는 예수님의 실제 십자가(The True Cross of Jesus)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십자군이 패망하면서 그 십자가는 파편이 되어 여러 나라로 유출되어 현재 그 존재를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맺음말
비아돌로로사는 모든 것을 버린 길입니다. 비록 현재 고난이 있다 해도 언젠가 이 고난이 밑거름이 되어 성공이 있고, 복락을 누릴 수 있다면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그 고생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슬픔의 길, 고난의 길 끝에는 잔인한 사형대가 준비 되어 있는 것입니다. 수고에 대한 대가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길, 오히려 수고의 대가로 쓴 열매가 기다리고 있는 길, 이것이 바로 비아돌로로사입니다. 이 길은 좁은 길이요, 결코 넓은 길이 아닙니다. 이 길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길이요, 전혀 인기나 보상과는 상관없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 세상 사람이 올때에는 절망의 길 허무한 길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길은 세상 사람이 볼때에는 절망의 길 허무한 길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길입니다. 

후기
필자는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간의 광야생활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고, 갈릴리의 예수님의 사역(제자 삼는 사역, 훈련시킨 사역)를 보면 나의 사역이 너무도 연약했음을 느끼며 심기일전하여 제자 삼는 일에 최선을 다짐하는 기간이었으며, 마지막 예루살렘 사역은 한 마디로 “내가 죽어야 성도들이 사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친히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비아돌로로사의 길을 가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하여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번 성지순례에 함께한 목회자와 성도들. 그 유명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이루어진 장소다.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은 자신의 죄로 인함이 아니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이다. 이제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다른 영혼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사랑과 헌신의 십자가, 사명의 십자가이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것이 복음의 원리이다. 이제 나의 남은 삶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과 남을 위한 삶이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 고난 주간에 우리 뉴욕 이민교회 성도들이 주님과 동참하며 COVID를 잘 이겨내고 믿음으로 승리하길 오늘도 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금번(1월 26일-2월 8일)성지순례에 함께한 모든 분들과 뉴욕 프라미스 교회와 원로 목사이신 김남수목사님과 김도윤사모님 그리고 현지에서 강의해 주신 권혁승교수님과 현지 가이드로 수고해 주신 김진산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뉴욕겟세마네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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