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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살인적 주거비 폭등에 ‘물가 대응’ 발목 잡힌 美 연준

입력 2022-10-03 04:10:01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건물에서 열린 ‘페드 리슨스’(fed listens) 행사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임대료 폭등이 미국의 물가 상승 주요인으로 지목되면서 연준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이날 파월 의장은 비영리단체, 소규모 사업체 운영자, 주택·교육 부문 등 다양한 분야의 관계자들과 대화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살인적인 주거 비용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물가 대응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임대료 폭등은 최근 물가 데이터를 끌어올리는 주요인으로 지목되고 있고, 노동자들의 생활비 위기도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대료 상승 영향이 내년까지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부동산 정보 업체 리얼터닷컴에 따르면 지난 8월 전국 세입자들의 소득 대비 월세 부담률은 26.4%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의 25.7%보다 0.7%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미 ‘주택 및 도시 개발부’(HUD)는 가구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이 30% 이상이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경우 지난달 임대료 중간값이 2626달러로 치솟아 세입자들의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은 46.5%까지 높아졌다. 지역민들의 소득 수준을 고려한 적정 임대료(1692달러)보다 934달러나 비싸다.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앤젤레스 지역도 임대료 중간값이 2946달러로 적정 임대료(2170달러)보다 776달러 높았다. 이곳을 포함해 미국 50개 대도시 중 9곳이 적정 임대료 비율을 초과했다.

이는 가구 소득 증가분보다 월세 증가분이 더 컸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피해를 회복하는 동안 미국에서는 노동력 부족으로 임금이 높아졌지만 그보다 월세가 더 빠르게 증가해 세입자 가구의 구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임대료 상승은 물가 데이터에도 압박이 되고 있다.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8월 개인소비지출(PCE)’은 6.2%로 전문가 예상치(6.0%)를 웃돌았다. 변동성이 큰 식품·에너지 부문을 제외한 근원 PCE는 4.9%로 전월의 4.6%보다 올랐다. 에너지 가격은 하락했는데 주택 및 유틸리티(1%), 식품(0.8%), 의료 서비스(0.6%) 등 다른 항목이 모두 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임대료 폭등에 따른 주거비 상승은 인플레이션 수치를 끌어올리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반면 가처분 소득은 0.4% 증가하는 데 그쳤다.

미 노동부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도 주거비 상승은 6.2%로 전월보다 증가 폭이 확대되며 전체 수치를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전체 CPI 물가상승률에서 주거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월 20%에서 지난달 25%까지 확대됐다.

리서치회사 인플레이션 인사이트 오마 샤리프 대표는 “주거비는 지난 3개월간 지속해서 상승하며 항공료나 호텔 요금 등의 하락을 상쇄했다”며 “올해 주거비는 인플레이션을 계속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주거비용이 당분간 소비자 물가 상승세를 견인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대료 상승은 미국 집값이 폭등하면서 수요층이 임대 시장으로 몰렸기 때문에 비롯됐다. 특히 최근에는 미 연준의 고강도 긴축 정책으로 대출 금리가 치솟으면서 자금 조달에 압박을 느낀 매매 수요층 상당수도 임대 시장으로 들어왔다. 주택 가격이 꺾인 뒤에야 임대료 하락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주택 경기가 하락하고 임대료 상승 추세도 일부 둔화한 데이터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 사이에서는 유의미한 임대료 하락은 당장 시작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미 부동산 전문 업체 점퍼에 따르면 뉴욕시에서 지난 9월 침실 하나짜리 주택의 월세 중간값은 전월보다 10달러 오른 3950달러로 집계됐다. 방 2개짜리 주택도 4410달러로 10달러 증가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원 베드룸 가격이 3100달러로 한 달 전보다 2% 상승했다. 투 베드룸 가격은 4170달러로 전월보다 낮아졌지만 하락 폭은 0.7%에 그쳤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임대료 상승은 주택 가격 급등과 시차를 두고 반영되고 있다”며 “최근 높은 대출 이자로 주택 시장에 냉각 조짐이 보이지만 집값 상승세가 둔화하더라도 임대료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주거비는 내년 중반 완화되기 전까지 근원 PCE 인플레이션에 압력을 추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댈러스 연은은 전년 대비 임대료 상승률이 내년 5월 8.4%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최근 “주택 매매 시장은 조정국면에 들어서겠지만 임대 시장에선 월세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연방대출금융기관 패니매(Fannie Mae)가 발표한 전국주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8%는 주택임대료가 향후 12개월 동안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리얼터닷컴 수석 이코노미스트 대니엘 헤일은 “만성적인 주택 부족 상태에서 많은 주택 구매 수요층이 임대 시장에 머물게 되면서 수요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임대료 증가세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팬데믹 이전 상태로는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임대료는 내년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도 “연간 임대료 상승률이 5~7%로 예측된다”며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안정적 수준으로 되돌리려면 향후 6개월간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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