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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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다른 가치를 산다는 것은

입력 2022-08-16 03:05:01


오르면 앉고 싶고 앉으면 휘두르고 싶은 것이 인간의 권력욕인가보다. 분야를 막론하고 가진 재주와 상관없이 마치 경주마라도 된 듯 너도나도 한 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린다.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극단적이고 영화보다 더 비극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숨은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봐주는 이 없어도 새로운 가치를 심고 가보지 않은 땅에 길을 내는 이들이 있다. 시작은 늘 자그마하다. 그래서 신선함이 주는 감동과 여운은 언제나 작은 곳에서 피어난다.

같은 세상에서 다른 가치를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는 비단 신앙인만이 던지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꿈꾸고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일하고 싶은 착한 욕망도 함께 품고 살아간다. 다만 어떤 욕망이 자신을 지배하게 할지는 본인만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고뇌할 수밖에 없다. 물론 고뇌가 그대로 실천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는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하다. 아는 것과 사는 것, 앎과 삶의 차이는 없는 것과 있는 것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근대의 문을 연 개항기에 낯선 한국 땅에 찾아와 위기의 시간을 함께 건넌 선교사들도 같은 질문을 던지며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남긴 수많은 기록과 어록은 한국교회가 어떤 질문 속에서 탄생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100년을 훌쩍 넘긴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들의 공적과 영광의 시간에만 관심을 두지만, 이들이 건넨 ‘찐’ 자산은 빛나는 성과가 아니라 소박한 성찰과 절제 있는 실천이었다.

“가장 없어 보이는 크리스천은 대가를 바라는 크리스천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성공이 아니라 성실이다.” “길을 내는 자는 그 행위로서 이미 보상받은 것이기에, 그에 대한 지분을 얻으려는 것은 장사꾼의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 고단한 선교지에서 일기장에 꾹꾹 눌러 적은 주옥 같은 문구들은 이들이 허황된 보상과 무모한 열정을 얼마나 경계했는지 보여준다. 이들이 찾은 답은 힘겹게 코로나의 강을 건너는 오늘의 교회들이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세상 한가운데서 다른 가치를 산다는 것은, 세상을 나무라기 전에 내가 먼저 삶의 기준을 바꾸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성공과 성과로 나를 드러내기보다 성실로 나를 다지는 것이다. 다른 가치를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이미 씨 뿌린 자의 씨앗과 먹는 자의 빵에 내려졌기에 그 이상을 탐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가치를 산다는 것은, 피안의 세계 깊은 곳에 숨겨진 황금방을 좇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생명의 문이 되라는 말씀을 충실히 받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손은 황금손이 아닌 약손임을 직접 보여준 윌리엄 스크랜튼은 ‘코리안 리포지토리’에 그의 생각을 이렇게 풀어냈다. 하나님 나라 확장 운동은 씨앗을 심는 일이고, 그 수확은 계절의 달력이 아니라 인생의 목표에 따라 거두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 나라 확장 운동을 하는 활동가이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세상을 위해 가장 아름다운 집과 가장 튼튼한 안전망을 짓는 노동자다. 같은 하늘 아래 다른 가치를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이들이 찾아낸 답이다.

상어와 고래가 한 바다에서 사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생태계다. 자연은 이치대로 인간은 습관대로 움직인다는데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을 상상하고 무엇에 따라 움직이는 걸까. 어느덧 반환점이다. 다시 신발 끈을 조이기에 앞서 정직한 자기점검이 한 번은 필요하지 않을까. 스크랜턴이 남긴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정신으로 했느냐이다. 그것이 마지막 평가의 기준이 될 것이다.”

하희정 감신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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