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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시대유감 ‘예의상실’

입력 2022-08-12 04:05:01


불쾌한 기억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출근길이었다. 앞에 걸어가던 청년이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있었다. 하필이면 회사 건물 모퉁잇돌에 코를 갖다 대더니 마킹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동시에 나도 모르게 “아이참!”이라는 신음 조의 감탄사가 툭 튀어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견주는 뒤돌아 나를 보더니 갑자기 시비를 걸어왔다. 반려견 행동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내가 반려견 행동에 비난과 욕을 했다는 것이었다. 자조적인 한숨 조의 감탄사라고 해명했지만 듣지 않았고, 그가 해석한 판단대로 나를 몰아세웠다. 아침 출근길 봉변이었다.

다른 날 출근길의 같은 불쾌감 하나 더. 경북 김천구미역까지 40분 정도 차를 몰아 주차장에 세우고 기차 편으로 서울을 오간다. 그날은 승차 시간이 임박해 도착했고, 주차장 빈자리를 찾아 제일 뒤 구석에 가까스로 주차하던 중이었다. 아마 나와 동병상련의 기차 탑승객이지 싶은 차주가 대뜸 내게 빨리 주차하라고 얼굴을 붉혔다. 아 민망해라! 장년의 남성을 객실 입구에서 다시 마주쳤는데 말끔한 그 남성이 다시 내게 분을 냈다. 오고 간 말은 없었지만 무슨 큰 잘못을 그에게 한 모양새를 억지로 할 요량으로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서울역을 매주 오가면서 매번 불쾌한 대우를 받는다. 하차 후 꼭 하필 공교롭게도 피곤하거나 짐이 많을 때 에스컬레이터는 고장이 난다. 빠짐없이 들르는 세면장은 코로나19가 창궐한 시절 내내 손 말리는 송풍기 둘 중 하나는 고장이 나 있고, 수리 후 재장착을 하겠다는 공지 일정만 바뀐다. 족히 2년을. ARS 사전경고 메시지도 그중 하나다. 이제는 익숙해졌다 싶을 만큼 일반화돼버린 언어폭력 처벌에 관한 내용으로 공손하게 협박(?)하는 것이다. 잠시지만 예비 범법자가 돼버린다.

누구의 노랫말처럼 화를 내면 나만 나이 든다. 그래서 웃어넘긴다. 하물며 억지 해석으로 잘못이 내게 있음을 스스로 자책한다. 반려견에게 잘했다 했어야 했고, 철도 승객에게 내가 먼저 도착해서 미안했다고 했어야 했고, 서울역 관계자에게 오히려 얼마나 민원이 많아 피곤하겠느냐며 격려해야 했고, 음성 메시지로 사전에 알려줘서 고맙다 해야 했다. 내가 잘못했네!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어야 그 불쾌감에 매이지 않을 수 있다.

작금의 시대유감은 ‘예의상실’이다. 개인의 자유가 최고 가치임에는 이견이 없다. 개인의 자유는 함께 지키고 견고히 해야 할 사회의 미덕이다. 우리는 국민 인민 시민 민중이라는 전체가 될 수도 없고 종속될 수 없다. 그래서 강한 정부는 위험하고, 개인들의 자유가 충돌할 때 사회적 합의에 따른 법으로 그 기준을 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에 의존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상적인 개인의 자유는 서로의 서로됨을 존중하는 것이 평화의 기초가 될 것이다. 이를 나는 예의라고 믿는다.

소리가 크거나, 힘이 세거나, 은밀히 교묘히 속이거나 하는 등의 우김과 꼼수로 점철되는 일련의 문화가 승리를 맛보면서 개인의 일상에 스며들어 학습이 되더니 주류의 자리를 꿰찬 듯하다. 아무리 고운말이어도 내용은 이미 나를 예비 범법자로 판단하고 있고, 공공재를 관리·감독하는 이들은 날짜를 변경한 것을 공지한 것으로 의무를 다한 듯하다. 또 순서에 상관없이 제 속도감에 맞춰 주차하라고 강요하고, 견주의 귀한 개가 누군가의 기물을 훼손해도 무방하단다.

혼란의 시대다. 허탈해지는 순간이다. 열매가 없다. 사랑 희락 화평 충성 온유 절제 인내 자비 양선이 강물처럼 흐르는 자유 사회의 근간인 예의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으려나.

정애주 홍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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