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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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성 목사의 하루 묵상] 휴가 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입력 2022-07-13 03:05:01


오래전 들은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이 종종 생각나곤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의 예 중 하나로 문풍지를 언급하셨습니다. 서양식 문은 정확히 맞아서 틈이 없이 꼭 닫혀야 합격입니다만 우리네 문은 문틀과 문이 적당히 맞으면 합격입니다.

그러다 보니 틈이 넓어 겨울에는 황소바람이 들어오는데 그래서 나온 게 문풍지입니다. 문 가장자리로 넓게 창호지를 발라서 바람을 막습니다. ‘틈이 있으면 문풍지로 막는다’, 이게 한국적이라는 것이지요. 그 말씀에 가슴이 따스해졌습니다. 서양식이라면 엉성한 문을 만든 목수는 당장 꾸지람을 들어야 하겠지만 우리는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면서 문풍지를 붙입니다. 그 엉성함과 부족함, 그 틈을 기꺼이 용인하는 여유가 엿보입니다. 멋진 우리 민족입니다.

마음이 따스해진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여러모로 부족한 자녀를 사랑하고 그 부족함을 당신들의 수고로 메우십니다. 그게 문풍지입니다. 또 주님의 복음이 역시 그러합니다. 복음은 정확히 100% 온전한 사람에게는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말입니다. 복음은 부족한 사람, 엉성한 사람, 아무리 노력해도 기준을 충족할 수 없는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죄인에게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엉성하고 부족해도 심지어 죄인까지도 용납하십니다. “괜찮아. 문풍지를 붙이면 돼”라고 말씀하실 때 그 문풍지는 십자가의 보혈을 통한 용서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문풍지인 셈입니다. 그날 종일 문풍지 생각을 하면서 행복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완벽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쫓기던 제게 여유가 생겼습니다.

‘대강 맞춰도 괜찮아’라고 생각하니 크게 격려가 됐습니다. 율법주의자처럼 100% 완벽을 생각할 때는 좁은 골방에 갇힌 듯 답답했지만, 이어령 선생님의 통찰력과 혜지가 저를 골방에서 건져낸 셈입니다.

생각은 위대합니다. 이 선생님의 말씀은 짧았지만 제 생각은 길었습니다. 짧은 생각이 긴 생각을 이끌어올 수 있는 이유는 그 짧은 생각에 영감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짧지만 긴 생각을 끌어내고 작지만 큰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 참 멋지지 않습니까. 그날 저는 넓은 바닷가로 휴가를 온 것처럼 마음이 여유로웠습니다. 마음이 넓어지니 삶에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생각은 참 묘합니다. 짧은 시간에도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고 좁은 곳에서도 큰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해외여행이라곤 가 본 적이 거의 없는 제자들을 앞에 두고 땅끝을 말씀했습니다. 생각은 아파트 평수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크기가 결정합니다. 골방에서도 우주를 품을 수 있습니다. 사방이 시끄러워도 마치 방음이 잘된 방에 있는 것처럼 마음을 조용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친구와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여유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부탁받아도 기꺼이 “제가 도와드리지요”라고 할 수 있는 따스함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름휴가를 가지 못하십니까. 시설 좋은 휴양지에서 탁 트인 바다를 보지 못한다고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바닷가 휴양지에서도 쫓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음을 바다보다 더 크게 키우고 골방에서라도 우주를 품고 마음을 주님의 평화로 최고급 호텔보다 아늑하게 만든다면 그게 진정한 휴가일 것입니다.

우리 생각을 이끌어 갈 이어령 선생님의 혜지와 같은 멋진 영감을 어디서 얻느냐고요. 성경에 무궁무진하게 들어있습니다. 성경 말씀 한 절 붙잡고 묵상할 때 비록 골방에서라도 마음은 바다보다 커지고 우주 끝에라도 날아갈 것입니다. 가장 멋진 장거리 휴가가 될 것입니다.

김운성 영락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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