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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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7월 13일] 누가 고엘인가, 보아스와 아무개

입력 2022-07-13 03:05:01


찬송 : ‘눈을 들어 하늘 보라’ 515장(통 256)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룻기 4장 1~12절


말씀 : 이방 여인 룻이 베들레헴에서 정착하려면 무엇보다도 ‘고엘(기업 무를 자)’이 필요했습니다. 고엘은 형제나 친족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도움을 베풀어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고엘의 의무는 첫째 누가 빚을 지고 갚지 못할 때 대신 빚을 갚아주는 일입니다. 둘째 누가 종으로 팔려갔을 때 몸값을 치르고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일입니다. 셋째 빚에 쪼들리다 땅을 팔았을 때 고엘이 대신 땅값을 치르고 땅을 도로 찾아주는 일입니다. 넷째 누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을 때 고엘이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살인자에게 보복하는 일입니다.

이 정도만 해도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이 어느 정도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지요.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과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요. 남편이 죽은 과부는 끈 떨어진 뒤웅박처럼 의지할 곳 없는 신세가 됩니다. 더군다나 자식 한 점 남기지 않고 남편이 죽었다면 과부는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죽은 남편의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형수결혼법, 줄여서 수혼법입니다. 우리에게는 낯설고 당황스럽겠지만 당시로써는 과부를 돌보는 훌륭한 사회복지 제도였습니다.

룻기에서는 형수결혼법을 확대하여 과부와 결혼할 사람을 죽은 남편의 동생뿐만 아니라 친척에까지 적용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친척이기 때문에 고엘로서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척이 있었습니다. 고엘에는 순서가 있는데 제일 먼저 형제가, 그다음에는 가까운 친척이, 그다음에는 먼 친척이 고엘이 되어야 합니다.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척이 룻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 친척이 고엘의 의무를 포기하면 그다음에 먼 친척인 보아스에게 순서가 돌아오게 됩니다. 보아스는 먼 친척을 불러다가 의향을 묻습니다. 이때 보아스가 그 친척을 부르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룻 4:1) 보아스는 친척을 ‘아무개(알모니)’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분명 모욕적인 말입니다. 보아스가 동네 사람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는데 ‘아무개’라고 부른 것은 아무래도 의도적인 것 같습니다. 고엘의 의무를 포기한 사람, 이주민이야 굶어 죽든 말든 아무 관심도 없고, 상관도 하지 않는 사람은 이름을 불러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먼 친척이 고엘의 의무를 포기함으로써 보아스는 합법적으로 고엘의 의무인 형수결혼법에 따라 룻과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룻기는 이렇게 상반되는 두 인물, ‘아무개’와 ‘보아스’를 대조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까운 친척 ‘아무개’는 고엘의 의무를 포기해서 이름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보아스는 고엘의 의무를 제대로 실천해서 괜찮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오종윤 목사(군산 대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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