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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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건숙 (28) 부족한 재정 메우려 몸 혹사… 새벽 기도회 도중 쓰러져

입력 2022-03-18 03:05:03
소설가 이건숙(왼쪽 두번째) 사모가 남편 신성종(왼쪽 세번째) 목사와 함께 2004년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방문해 이영훈(오른쪽 두번째) 목사와 환담하고 있다.


몸을 짓누르는 무게에 눌려 간신히 눈을 뜨니 남편 신성종 목사가 내 옆에 엎드려 있었다. 한의사도 다녀갔는지 목 뒤에 자잘한 일회용 침이 꽂혀 있었다. 온몸에 생명구조 장치가 주렁주렁 달렸고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의식이 돌아와 눈을 뜬 나를 보더니 남편은 흐느꼈다.

“살아났군.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어. 이제 우리 고국으로 돌아가서 치료를 받자. 온전히 당신을 위해서 내가 살 거야.”

말을 못 했으나 귀는 열려서 그의 말을 다 들을 수가 있었다.

“하나님이 생명만 건져주시면 똥오줌을 싸도 좋으니 살려달라고 기도했어.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신 거야. 이제 됐다.”

나는 새벽기도회 도중 쓰러졌다. 늦게 배운 운전으로 이웃에 사는 권사님을 모시고 새벽기도회를 다녔는데 모두가 다 나와도 사모가 보이지 않자 가보니 내가 의식이 없었다고 했다. 권사님이 사람 살리라고 악을 쓰며 고함을 치니 마침 남아 있던 부목사가 듣고 바로 구급차를 불러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민 목회는 재정까지 부족해 나는 교인들과 길거리에 나가 ‘우노 달러(1$)’를 외치며 헌 옷을 팔아 성전 짓는 일을 도왔다. 몸을 혹사하며 병을 얻긴 했지만, 그 시기 맺었던 그들과의 사랑에서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거기 모인 성도들이 바로 교회라는 큰 교훈을 얻었다.

나는 말도 어눌하고 왼쪽을 잘 쓰질 못했다. 그렇게 몇 개월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남편은 LA에서 귀국을 서둘렀다.

“여기 있다가는 당신이 살아남지 못하겠어. 무조건 돌아가자. 내가 오늘 마지막 고별설교를 할 터이니 당신은 맨 뒷줄에 앉아 있다가 송영이 울려 퍼지는 동안 내가 나오면서 등을 칠 터이니 나를 따라 나오라고.”

새로 지은 성전에 자리가 모자라도록 운집한 성도들은 행복에 가득 차서 그게 마지막 설교인지도 모르고 문 앞에 나와 신 목사와 악수하기를 고대할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교회를 등지고 빠져나왔다. 남편은 서서히 차를 몰아 교회를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손꼽을 정도로 큰 터를 잡은 교회다. 성전도 크게 지었고 교회 울타리 안에 노인 성도들이 살 160유닛(Unit)의 양로원을 지을 돈도 마련됐다. 다 이뤄놓고 고생만 하고 떠나는 것이다. 항상 남편은 그랬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을 보니 눈물이 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다. 차는 성전을 한 바퀴 돌고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남편은 말이 없었다. 서울을 떠날 적의 막막함과 7년간 이 교회 터를 사서 성전을 지은 모든 일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모양이다. 매일 새벽마다 설교를 했고 울부짖던 기도를 내려놓고 우리는 떠나고 있었다. 이런 그를 향해 나는 가만가만 천천히 말했다.

“수고했어요. 너무나 훌륭하게 당신은 해냈어요. 전 당신을 존경해요. 당신만큼 훌륭한 목사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굳어있던 남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애들이랑 당신,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

우리 부부는 교회 덩치만 한 큰 짐을 주님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가뿐한 몸으로 성전을 벗어났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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