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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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장식 (1) 시련과 고난의 지난 100년 세월 주께서 살게 하셨다

입력 2021-06-08 03:05:03
100세 신학자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5일 경기도 화성 ‘광명의 집’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이 명예교수는 자신이 한 세기를 살았다기보다 주께서 한 세기를 살게 하셨다고 했다. 인터뷰 며칠 전 계단에서 넘어져 얼굴을 많이 다쳤지만 웃음은 잃지 않았다. 신석현 인턴기자


100년을 회고해서 몇 마디로 말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시대의 변화도 많았으니 그리 간단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시종일관 생각하는 건 하나 있다. 지금껏 살아서 예수를 믿고 신학을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건 내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한 일이란 것이다. 한 세기를 내가 살았다기보다 주께서 한 세기를 살게 하셨다가 맞는 말일 것이다.

지난 한 세기는 우리에게 민족의 존망이 걸렸던 시련과 고난의 세월이었다. 나 역시 그 세월의 한 증인이다. 나라 빼앗긴 백성으로서의 운명의 쓴맛,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아픔, 그리고 교수와 목사로 살면서 영욕 간에 많은 일들을 겪었다. 어떤 요행을 바랄 수도 없는 시대였다. 내가 폭탄을 피하거나 총알을 피해갈 수는 없다. 총탄이 나를 피해갔다고밖에 볼 수 없는데,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

건강이 비교적 좋아서 여태 견딜 수 있었고, 다소 이해력이 있어서 책을 읽고 또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삶을 보장해주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은 내게 없다. 결국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 생각한다.

80세 때 자서전을 썼는데 제목을 ‘창파에 배 띄우고’라고 지었다. 넓고 거친 고해 같은 인생길, 좌초의 위험이 언제든 도사리는 바다 한복판에서 나를 물가로 인도한 건 늘 하나님이었다는 고백의 의미를 담았다. 자서전을 쓴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감사할 수밖에 없다. 주님을 믿지 않았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내 인생은 참으로 행복했다. 행복이라는 것이 어떤 물질의 소유나 건강으로부터도 오겠으나, 내게 있어 행복은 마음이 즐겁고 바라는 것을 추구했다는 데 있다. 각 시대마다 시대가 주는 괴로움이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엔 피신해야 살 수 있었고, 한국전쟁 때는 은신해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헤쳐 나갈 길을 열어주셨다.

원수보다는 은인이 많았다.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말은 어찌 보면 막연한 말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확신을 갖고 이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은 항상 누군가를 통해 부족한 나를 도우셨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믿음의 선배들, 지금껏 삶의 여정을 함께하고 있는 아내 등 그분들이 내겐 천사와 같았다.

지금도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돼서 악과 불의를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에 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서 영생을 취하며, 부르심을 받은 대로 많은 사람 앞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라고. 그리고 하나님은 또 한 번 기회를 주셨다. 내 삶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지만, 아무쪼록 이번 역경의 열매가 내 삶 속에 끊임없이 역사하신 하나님이 드러나는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약력=1921년 경남 진해 출생, 한신대 졸업, 캐나다 퀸즈신학대 졸업, 뉴욕 유니언신학교 신학석사, 아퀴나스신학대 신학박사, 예일대 신학부 연구 교수, 계명대 교목 실장, 케냐 동아프리카장로교신학대 교수, 한신대 명예교수.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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