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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박종석 (10) 사업 승승장구 할수록 하나님과 거리는 점점 멀어져

입력 2021-05-24 03:05:04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가 LG전자 PDP TV 사업부장이던 2009년 1월 경북의 구미사업장에서 열린 PDP사업부 신년모임에서 직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매를 견디어 내는 힘이나 정도’. 맷집의 사전적 의미다.

권투 선수가 체력을 키워 맷집을 향상시키듯 기업과 사업을 하는 사람이 ‘생각의 맷집’을 키우려면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PDP TV 사업부장이 된 후 나는 구성원들과 ‘생각의 맷집’을 키우며 흑자전환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우선 매출을 올려야 했다. 당시엔 신모델 경쟁이 치열했다. 제품력을 강화해 시장에서 더 많은 선택을 받아야 했다. 화질 등 TV의 기본 성능을 개선하는 동시에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

비용도 줄였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재료비를 신기술과 아이디어로 줄여 나갔다. 전 구성원이 뭉치니 가능했다.

주변의 도움도 받았다. 사업 규모가 커진 LCD TV 사업부는 기꺼이 PDP 쪽 인력을 받아줬다. 비용은 자연스럽게 절감됐다.

내가 맡은 PDP TV 사업부는 흑자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적자인 PDP 모듈 사업부가 마음에 걸렸다. 절반의 성공처럼 느껴졌다. 두 사업부를 함께 경영하자고 회사에 제안했고 2009년 하나로 합치니 흑자 도전은 더 수월해 졌다.

세트를 담당하는 TV 사업부와 모듈 사업부가 한 팀으로 일하면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왔다. 전략기획팀에 있을 때 세트와 부품이 함께 부품사업전략을 구축한 것과 유사했다. 구성원들과 크고 작은 아이디어를 재미있게 실행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건 TV화면 테두리인 베젤을 얇게 한 것이다. TV를 볼 때 소비자는 화면을 보지 테두리는 안 본다. 테두리는 화면을 만드는 수단에 불과했다.

모듈팀은 베젤이 얇은 신모듈을 개발했고 이를 이용해 디자인팀과 세트팀이 2009년 날씬한 PDP TV를 만들었다. 이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출시한 LG전자 PDP TV의 베젤은 해외 경쟁사 제품들보다 월등히 얇았고 예상대로 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이에 따라 PDP 모듈을 포함한 PDP TV 전체 사업은 흑자로 전환했다.

PDP TV 사업은 잘 됐지만 신앙생활은 쉽지 않았다. 가족과 떨어져 구미에서 근무한 데다 아버지는 신장병으로 교회에 가지 못해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렸다. 나도 교회를 거르는 일이 잦아졌다. 어머니와의 약속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으나 회사일의 비중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예배는 소원해졌다.

결정적으로 교회와 멀어지게 된 건 2010년 인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회사는 PDP TV로 나의 경영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했고 MC사업본부장으로 발령을 냈다. 바로 스마트폰 사업 부서였다.

MC사업본부는 PDP TV 사업보다 일하는 사람도, 하는 일도, 매출도, 책임도 10배쯤 됐다. 이미 경쟁사들이 시장을 장악했고 소비자들도 경쟁사 제품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후발주자인 LG전자로선 소비자 인식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업무강도도 높았다. TV는 1년에 한 번 정도 신모델이 나오지만 스마트폰은 여러 차례 신형 모델을 출시해야 했다. 소비자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와 아이디어도 끊임없이 쏟아내야 했다.

혼신의 힘을 쏟아 부어야 했다. 그 사이 하나님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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