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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박종석 (9) 엔지니어 출신으로 회사 미래 성장 위한 중책 맡아

입력 2021-05-21 03:10:01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가 LG전자 PDP TV 사업부장이던 2007년 11월 경북의 구미사업장에서 구성원들과 사업 아이디어 내용을 점검하고 있다.


2004년 1월 LG전자는 파격 인사를 냈다. 파격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그동안 문과 쪽 사람들로 채워졌던 LG전자 전략기획팀장에 뼛속까지 엔지니어인 나를 발령 냈으니 말이다.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LG전자는 기술 중심의 회사인 만큼 기술을 이해해야 제대로 된 전략을 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인사 직후 김 부회장은 나에게 미래 성장전략을 짜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디지털TV만 만들다 매출 수십조 하는 회사의 성장전략을 짜려니 막막하면서도 도전의식이 발동됐다.

우선 전략기획팀 구성부터 변화를 줬다. 문과 출신의 사람들이 대부분인 곳에 이과와 문과의 비중을 절반씩 맞추기로 했다. 전사적으로 공고를 냈다.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전략을 짜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과 인재들이 지원해 ‘하이브리드’ 팀을 꾸렸다.

팀원들과 똘똘 뭉쳐 미래 먹거리를 찾았다. LG경제연구원도 우릴 도왔다.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방법이 나올 때까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특히 전략기획팀에 있으면서 기억에 남는 건 부품사업 전략이다. 당시 김 부회장은 부품에 주목했다. 요즘 뜨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던 셈이다. 부품 사업을 키우려면 LG전자처럼 그 부품을 사용하는 세트메이커의 인식 전환부터 필요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트메이커는 가격, 기술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 있는 부품을 선호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첨단 부품의 경우 처음부터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니 경쟁력 없는 부품을 세트메이커는 사용하지 않고, 세트메이커가 사용하지 않으니 부품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악순환의 고리를 깨기 위한 전략을 마련했다. 세트메이커의 지원을 받아 부품사가 경쟁력을 확보해 간다는 전략이었다. 결과는 좋았다. 특히 경쟁력을 갖추게 된 카메라 모듈 사업은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에 큰 도움을 줬고 LG이노텍의 주력사업이 됐다.

전략기획팀에 이어 2007년 또 다시 새로운 길이 열렸다. PDP TV 사업부장(부사장) 발령이었다. 당시 시장에선 액정 디스플레이를 쓰는 LCD TV를 선호했다. 플라즈마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는 PDP TV는 점차 소비자의 외면을 받던 시기였다. 회사는 타임머신TV 같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성적이 좋지 않은 PDP TV를 살리라는 임무를 줬다. 당시 PDP TV는 회사에서 이익을 까먹는 골칫덩이였다.

경북에 있는 LG전자 구미사업장으로 갔다. 연구소장 출신이 사업 책임을 맡는다는 게 LG전자 안에서 흔하던 시절은 아니었다.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좋은 결과를 내야 했다.

PDP에는 두 개의 사업부가 있다. 세트를 담당하는 PDP TV 사업부와 TV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디스플레이 모듈을 담당하는 PDP 모듈 사업부다. 나는 PDP TV 사업부를 맡았고 1년 뒤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매출을 늘리고 비용을 줄였기에 가능했다. 말은 쉽지만 실행은 쉽지 않았다.

전 구성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중도 포기는 없었다. 말 그대로 ‘생각의 맷집’이 필요한 시기였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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