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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콩팥병 환자 잦은 혈관 확장술, 혈관 생명 위협한다

입력 2020-09-01 04:10:01
한림의대 동탄성심병원 신장내과 최선령(오른쪽 두 번째) 교수가 혈액투석 환자의 팔 혈관 상태를 초음파검사로 살펴보고 있다. 유기적인 투석혈관 평가로 불필요한 치료를 최소화할 수 있다.


3개월마다 관례적 시술 증가 추세
혈관 벽 되레 두껍게 만들 가능성
“한 번 수술 완성도 높이는 게 중요”

김모(45·여)씨는 1년 전 말기 콩팥병 진단을 받고 하루빨리 혈액투석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다. 그녀는 한쪽 팔에 혈액투석을 위한 ‘동정맥루(동맥과 정맥 연결 통로)’를 만들었지만 혈관이 미성숙해 혈액투석을 받을 수 없었다. 대개 통로를 만들고 1~3개월 정도면 혈관이 자라나 혈액투석을 할 수 있는데 그녀는 6개월이나 걸렸다.

급한대로 오른쪽 목 부위 큰 정맥(중심정맥)에 도관을 꽂아 투석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팔이 퉁퉁 붓는 부작용이 생겼다. 중심정맥이 좁아지는 협착증이 발생한 것. 혈액투석도 고역이지만 3개월마다 한 번씩 좁아진 혈관을 넓히는 ‘혈관성형술’을 받는 번거로움도 컸다.

1년에 300번 혈액투석 ‘고역’

콩팥(신장)은 하루 180ℓ의 혈액을 걸러내 소변으로 배출하고 체내 항상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3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처럼 콩팥 기능이 망가진 만성 신장병 환자는 2015년 17만576명에서 지난해 24만9288명으로 5년간 46.1%나 늘었다. 고령 인구와 당뇨, 고혈압 등 만성 질환자들이 증가한 영향이 크다.

만성 콩팥병이 악화돼 회복될 수 없는 상태(말기 신부전)에 이르면 혈액투석이나 복막투석, 콩팥이식 등 3가지 방법 중 하나를 받아야만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 콩팥이 완전히 망가져 기능이 10% 전후로 남을 경우 고려된다. 전체 말기 신부전 환자의 74%가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2017년 기준).

혈액투석은 기계를 이용해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낸 뒤 다시 넣어주는 방법이다. 주 3회씩 1년에 약 300번, 매회 4~5시간씩 주삿바늘을 꽂는 고충을 감내해야 한다. 이런 혈액투석 환자는 2018년에 9만명을 넘었다.

그런데 혈액투석 환자가 늘면서 덩달아 과도한 투석혈관 성형술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의료계 내에서 나오고 있다. 잦은 혈관치료는 합병증을 가속화시켜 자칫 혈관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혈액투석을 받게 되면 투석 장비로 충분한 양의 피가 보내지도록 팔에 있는 동맥과 정맥을 이어 ‘동정맥루’라는 굵은 혈관을 만든다.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면 동맥의 압력에 의해 정맥의 크기가 커져서 훨씬 많은 양의 혈액을 투석기로 보낼 수 있다. 환자의 혈관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인조혈관(도관)’을 삽입해 투석 통로를 확보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투석혈관은 환자에게 생명줄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장기간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잦은 주삿바늘 노출 등으로 인해 혈관이 좁아지거나 혈전증(피떡이 생김)이 발생해 투석 혈관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혈관이 좁아지면 혈류가 정체되고 압력이 높아져 팔에 부종이 생길 수 있는 것. 인조혈관인 도관을 오래 꽂고 있어도 혈전과 협착이 생길 수 있다.

한림의대 동탄성심병원 신장내과 최선령 교수는 “투석을 위해 혈관에 꽂은 바늘에 의해 혈관벽 손상, 환자의 혈관상태, 반복적인 혈관시술, 고혈압 및 당뇨 등 복잡한 원인으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투석 효율이 떨어짐은 물론 투석 자체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환자 생명과 직결된다.

3개월마다 관행적 ‘투석혈관 성형’

투석 혈관에 협착증이 생기면 ‘풍선 카테터’라는 가느다란 관을 삽입해 혈관을 넓히는 혈관성형술을 시행한다. 이처럼 투석혈관이 망가져 혈관성형술을 받는 환자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2008~2016년 혈액투석 환자 17만명 분석 결과 9년간 혈관성형술 등 투석혈관 치료가 2.6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혈관성형술 빈도가 높은 환자군의 경우 3개월 간격으로 반복 시술이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환자 혈관에 3개월 마다 이상이 생겼다고 보기보다는 3개월마다 관례적으로 시술을 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란 게 의료계 의견이다.

혈관 평가는 형태와 기능 평가로 이뤄진다. 최 교수는 “형태 평가의 경우 혈관 지름이 50% 이상 감소했을 때 협착이 있다고 한다. 기능 평가에서는 협착이 있어도 혈류량이 유지되고 투석에 이상이 없으면 혈관성형 등의 치료를 하지 말라고 권고사항이 바뀐 상태”라며 “하지만 아직도 형태 평가를 기준으로 치료하는 관행이 남아있다”고 했다.

그는 “모든 약에는 효과와 부작용이 따르듯 혈관성형술도 예외가 아니다. 잦은 혈관성형술은 혈관벽이 두꺼워지는 등의 합병증을 가속화시켜 오히려 투석혈관의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2018년 문을 연 한림의대 동탄성심병원 투석혈관센터는 이처럼 불필요한 투석혈관 치료를 최소화하기 위해 투석혈관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했다. 투석센터 의료진과 투석실 간호사, 환자 간 유기적인 소통이 핵심이다. 의료진은 적극적인 신체검진과 건강보험적용으로 접근성이 높아진 혈관초음파검사를 이용해 포괄적인 진단을 내리고 치료 방향을 정한다. 투석실 간호사는 환자 상태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혈관 문제를 조기에 찾아낸다. 환자들 또한 평소 주의할 사항들을 지속적으로 교육받아 자신의 혈관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도록 하고 있다. 혈관 상태가 좋지 않아 시술이나 수술이 필요할 경우 당일 치료 및 퇴원이 가능하다.

투석혈관센터장인 흉부외과 이재진 교수는 “혈액투석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한 번의 투석혈관 조성으로 기능을 가능한 오랫동안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투석혈관에 문제가 생겨 새로운 혈관을 만드는 경우에도 인조혈관 보다는 자기 혈관(동정맥루)을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투석 혈관에 이상이 생기면 충분한 혈류가 나오지 않고 혈관 압력이 올라가 팔이 붓거나 주삿바늘 제거 후 지혈 시간이 늘어나는 등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동정맥루나 인조혈관 부위는 눌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투석혈관이 부풀어오르는 ‘동맥류’가 생기면 그 부위 피부가 얇아지는데, 광택이 날 정도가 되면 급성 출혈로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다. 이 교수는 “가능한 한 번의 수술로 오랜기간 안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투석혈관을 만드는 것이 환자의 장기 생존율과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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