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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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는 이들과 어떻게 평화를 이룰 것인가

입력 2020-07-03 00:10:01
‘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 공동 저자 팀 켈러 뉴욕 리디머장로교회 설립목사(오른쪽)와 존 이나주 워싱턴대 ‘법과 종교’ 교수가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북트레일러 영상 캡처




미국 구도심의 흑인 청년에겐 인종 차별을 조장하는 미국 자체가 거악(巨惡)이다. 지역 경찰은 권력을 남용하는 악한이다. 교육시설과 일자리도 변변치 않은 동네에서 흑인이 성공하기 위해선 범죄에 가담하는 게 최선이라고 여긴다.

미국 경찰에겐 법을 어기는 사람이 악당이다. 흑인 목숨도 중요하지만(Black Lives Matter), 인종 문제 때문에 범죄에 눈감아선 안 된다고 여긴다. 어떤 사안이든 사법 당국이 진실을 밝혀내리라 믿는다.

두 이야기에서 영웅과 악당은 누구인가. 전자에서 경찰은 악당이지만, 후자에선 위험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시민의 영웅이 된다. 위의 내용은 2014년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백인 경찰의 총에 맞은 뒤 갈라진 미국 여론을 요약한 것이다. 이 일로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퍼거슨 시위’가 일어났다. 최근엔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있었다.

기독교인은 어느 편에서 바라봐야 할까. 랩으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며 흑인 인권에 목소리를 내는 흑인 래퍼 랙래(Lacrae)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악당이다. 유일한 참된 영웅은 죄로 변질된 사회 구조를 바로잡아 줄 예수님이다.”

책은 랙래를 비롯해 목회자와 교수, 변호사와 정신과 의사, 작가와 가수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는 미국 기독교인 12명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책은 공동 저자인 팀 켈러 뉴욕 리디머장로교회 설립목사와 존 이나주 워싱턴대 ‘법과 종교’ 교수가 기획했다.

글의 주제는 3가지로 ‘기독교인은 어떻게 차이를 극복하고 이웃에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세상에 섞이지 않고 구별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움츠러들지 않고 섬길 방법은 무엇일까’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기독교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는 이웃과 어떻게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까.’

개신교 국가로 출발한 미국은 현재 개신교 문화보다 다원주의적 신념이 우세한 상황이다. 인종, 종교, 성에 관한 다양한 견해가 등장하고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공동선은 사라지고 분열이 심화됐다.

이 가운데 두드러지는 쟁점은 ‘인종 문제’다. 미국 태생의 일본계 미국인 이나주 교수는 책에서 “백인 복음주의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고 말한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경 정책에 관한 공개 토론 중 상대로부터 돌연 ‘미국엔 언제 왔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질문자는 인종 차별 관련 책을 두 권 낸 저명한 백인 복음주의자였다. 하버드대를 나온 대만계 미국인 톰린 기독학생회(IVCF) 대표와 흑인 여성 트릴리아 뉴벨 남침례교 윤리와종교자유위원회 지역사회봉사국 책임자도 학창 시절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다원주의 정책으로 역차별을 당한 사례도 나온다. 작가이자 성공회 여성 사제인 티시 해리슨 워런은 밴더빌트대 기독 동아리에서 사역하다가 “교리적 차별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캠퍼스에서 쫓겨난다. 대학은 객관적인 모든 견해를 포용할 것을 보장해야 하는데, 기독 동아리가 소속 학생에게 신앙고백을 요구하는 건 문제라는 이유였다.

책은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세상 속에서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특정 정치성향과 지나치게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은 십자가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 사회에 사랑과 섬김의 자세로 나아가는 것이다. 겸손과 인내, 관용을 품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갈 때 인종과 종교, 성적 지향이 다른 이웃과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

책은 “이웃을 사랑하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그 의무가 면제되지 않는 게 기독교인”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인은 사랑으로 자기 몸을 내어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부름을 받았다.(롬 5:1~2) 대립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우리 사회에서도 기독교인이 겸손과 인내, 관용의 자세로 사회 문제 해결에 앞장선다는 소식을 자주 들을 수 있길 기대한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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