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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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바위 속 검푸른 심연… ‘금빛 용의 승천’ 비경

입력 2020-07-01 18:10:01
경북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왕피천 용소를 상류 쪽에서 드론으로 내려다본 모습. 검푸른 물길 오른쪽 가운데 크게 입 벌리고 있는 모양의 하얀 바위가 용머리바위다.


베이컨 시트(왼쪽) 등 기기묘묘한 종유석과 석순 등으로 아름다운 성류굴.


울진엑스포공원과 망양정 해맞이광장을 잇는 왕피천 케이블카.


금강송면 왕피리 속사마을 전경.


장마가 끝나면 본격 무더위가 이어진다. 올여름은 세계적으로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우리나라도 예년보다 더울 것이라는 예보가 나온 상태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마스크까지 착용하면 체감 더위는 더 심해질 전망이다. 한적하고 시원한 계곡을 따라 물길을 걸으며 더위를 식혀보자. ‘왕의 피신처’인 경북 울진의 왕피천(王避川)이다.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울진군 금강송면(옛 서면) 왕피리와 근남면 구산리를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61㎞의 물길이다. 골짜기도 깊고, 태초의 모습을 닮아 있어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험준한 산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둘러싸여 접근이 쉽지 않아 오지이자 청정지역으로 꼽힌다. 국내 최대 규모의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산양·수달 등 멸종위기 동물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왕피천에 전해오는 얘기가 있다. 이름 그대로 왕이 피란했다는 곳이다. 옛날 삼한시대 말기 강원도 삼척 일원을 지배하던 실직국의 마지막 왕인 안일왕이 강릉지방을 지배하던 예국의 침공을 받아 피신해 항전하다 끝내 목숨을 잃었단다. 왕피천 인근에 안일왕 산성이 있다. 거리고(병기를 보관했던 창고)·임광터(군사들이 쉬어간 곳)·병위 등 자연부락 이름도 군사용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시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까지 들어와 목숨을 구했다는 전설도 있다.

생태 탐방은 구산3리 굴구지마을에서 출발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간다. 울진에서도 오지인 굴구지마을은 아홉 굽이 산자락을 돌아가야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좁은 도로 끝에 상천 환경감시 초소가 있다. 이곳에서 왕피리 속사마을로 향한다.

초소가 있는 고갯마루에서 지그재그로 이어진 산길을 따라 내려서면 계곡 옆으로 길이 이어진다. 계곡으로 들어서면 수정같이 맑은 물길을 따라 자갈밭과 모래톱 그리고 하얀 바위 위를 걷는 맛이 일품이다.

1㎞쯤 가면 왕피천의 으뜸 절경인 용소(龍沼)가 나온다. 협곡을 이룬 바위 절벽이 매끈하게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바위 앞 심연은 검푸른 물빛을 내뿜는다. 왕피천에서 가장 폭이 좁고 깊은 곳이다. 협곡으로 세차게 흘러내리는 물길이 장관이다.

깊은 웅덩이에 전설이 서려 있다. 안내판에 이곳에 살던 용이 금빛 비늘을 번쩍이며 하늘을 오르는데, 그 광경을 본 만삭의 새댁이 금빛 비늘이 붙은 아이를 낳았다고 적혀 있다.

상류 쪽에서 보면 어른 5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입을 벌리고 있는 용을 닮은 용머리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몸통처럼 보이는 암벽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이후 자갈밭이 펼쳐진 물줄기를 따라 자연의 속살을 걷다가 서너 차례 물굽이를 돌면 왕피리 속사마을에 닿는다. 걷는 내내 들리는 것은 물 흐르는 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뿐이다.

굴구지마을에서 하류로 향하면 선유산 절벽 아래 2억5000만년 전에 탄생한 석회동굴인 성류굴(천연기념물 155호)이 있다. 총 길이 870m 가운데 개방된 구간은 270m다. 내부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명문과 글, 그림 등이 남아 있다. 미개방 구간에서 최근 임랑, 공랑 등 화랑의 이름과 울진현령 이복연의 이름 등이 새겨진 명문이 발견됐다. 좁은 입구를 들어서면 순간 넓게 트이며 환상적인 석회동굴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여름에도 16도 안팎으로 시원함을 더한다.

왕피천이 바다로 흘러들기 직전에 새로운 관광명소가 들어섰다. 울진엑스포공원에 1일 개장한 왕피천 케이블카다. 왕피천 건너편 망양정 해맞이광장까지 715m를 최대 55m의 높이로 잇는다. 케이블카를 타면 한쪽으로는 왕피천과 울진 시가지를, 다른 쪽으로는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 여행메모
36번 국도 직선화로 소요시간 단축
삼근리에서 박달재 넘으면 왕피리

승용차로 경북 울진을 간다면 동해고속도로를 이용해 근덕나들목에서 7번 국도를 따라간다.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풍기나들목이나 영주나들목에서 빠져 36번 국도를 타고 울진으로 향한다. 불영계곡을 따라 꼬불꼬불 이어지는 36번 국도는 올들어 직선화되면서 훨씬 편해졌다. 경북 봉화에서 울진까지 소요시간이 1시간 25분에서 35분으로 크게 줄었다.

왕피리 속사마을로 가려면 36번 국도를 타고 가다 금강송면 삼근리에서 박달재를 넘어가면 되고, 굴구지 마을로 가려면 7번 국도에서 들어서면 된다. 두 마을간 거리는 왕피천 물길로 5㎞ 남짓이지만 연결 도로가 없다. 차로 돌면 50㎞ 거리다.

왕피천 트레킹은 큰비가 내린 후에는 피하는 게 좋다. 잘 마르는 등산복과 계곡 트레킹화가 필요하다.





울진=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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