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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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둘레길에서 만나는 생명력 있는 쉼의 공간

입력 2020-06-04 00:10:01
2020년초 준공한 서귀포성결교회 비전센터. 아벨건축사사무소 제공


사진은 센터의 로비에 설치된 조형물로 노출콘크리트와 조명을 활용해 십자가의 상징성을 극대화시켰다. 아벨건축사사무소 제공




해방 이후 도시가 발달하면서 교회도 크게 성장했다. 새로운 예배당이 필요했고 더 큰 예배당을 지어야 했다. 2000년도 이후부터는 도시재개발, 재건축 등의 개발정책으로 교회를 지어야 했다. 새롭게 건축한 교회들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존의 교회건축과 현대교회건축을 비교할 수 있게 됐다.

더러는 경쟁적으로 교회건축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시설 노화로 인한 건축이었고, 현대교회건축으로 진입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교회건축이 디자인 중심적이었고 건축의 본질인 ‘공간’에 대한 이해는 많이 부족했다.

공간은 사용자에게 심리적, 행태적 변화를 주는데 이런 공간의 본질을 잘 몰랐던 것이다. 공간은 머물게도 하고, 방문자를 다시 찾아오게도 한다. 그리고 풍요로운 생활 일부분으로 삶의 질을 높여준다. 현대건축의 탄생은 중세건축에서 나타난 과도한 장식을 없애고, 공간의 본질적 기능을 추구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들의 교회건축은 또 다른 장식을 과도하게 부여하면서 화려하게 치장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현대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미니멀리즘과 단순성’은 미국에서 나타난 운동이다. ‘최소의’ ‘극소의’라는 의미로 사실적 표현의 극소화, 최소한의 조형 수단에 의한 작품제작을 의미한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장소를 중심으로 분석해 보면 단아하고 세련된 건물 주변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명소마다 매우 간결한 디자인 건축을 쉽게 접하게 된다. 십수 년 후에 다시 방문해도 그 느낌 그대로이다.

이처럼 건축은 유행에 민감하지도 않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우리를 겸손하게 마주한다. 그 내부에 들어서면 공간이 주는 감동은 분수처럼 쏟아진다. 우리 주변 교회건축에도 이와 같은 건축이 많이 등장하길 바랄 뿐이다.

문학과 예술, 소설이나 미술, 영화, 음악, 희극을 보면 스토리와 클라이맥스(climax)가 있다. 이러한 극적인 구성을 플롯(plot)이라고 한다. 건축은 종합예술이다. 그래서인지 건축은 예술 분야의 선두권을 빼앗긴 적이 없다. 다양한 장르에서 스토리가 밋밋하고 클라이맥스가 약하면 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그렇기에 작가는 온 힘을 기울여 스토리를 다이내믹하게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건축에서도 마찬가지다. 설계자가 건축의 본질인 공간을 다루는 것도 이와 같다. 공간이 갖고 있는 특질을 다양하게 분석하고 여러 장치를 활용해 극적 변화가 있는 공간을 창조한다. 그것은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작업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서귀포성결교회 비전센터는 매우 의미 있는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생명력이 있는 공간, 풍요로운 공간을 충분히 구현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서귀포는 한라산 정상에서 남부로 내려가는 마지막 도시 끝에 위치한다. 1136도로를 통해 제주시와의 교통량을 해결하고 있다.

교회는 제주 둘레길에 접한 곳에 있다. 이기원 담임목사는 둘레길을 걷는 다수의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장소, 청소년 비전센터로의 기능을 원했다. 북쪽 도로에서 보는 파사드(앞면)와 정남향 배치의 디자인은 모뉴먼트(monument)하면서도 공간의 풍요로움과 여유 그리고 편안함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게 했다. 파사드는 노출콘크리트의 무거운 수평 덩어리를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공중으로 띄웠다. 거기에 수직 덩어리를 교차시켜 종교적 상징인 십자가로 형태를 완성했다.

제주 둘레길은 주민들과 관광객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귀포성결교회에 닿게 된다. 1층 필로티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열린 장소로 쉼을 제공한다. 카페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필로티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과 소통의 장소가 된다. 2층으로 오르는 진입로는 본관동을 사용하는 성도들 동선과 근접시켰다. 특히 진입 부분은 청소년들에게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궁금증을 유발해 자연스럽게 공간 체험을 유도했다.

2층 원형 천창 아래는 홀과 만난다. 이곳에 도착한 성도들에게 빛의 폭포에서 세속의 몸을 정화한다. 그리고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임재를 느끼도록 했다. 이곳을 지나면 과하다 싶을 만큼 긴 복도와 마주한다. 흔한 창문 하나 없는 이곳엔 오직 발끝과 복도 천장에서 스며드는 어머니의 미소와 같은 부드러운 빛이 복도 끝으로 이끌고 있다.

복도를 감아 돌아서 들어온 교육 공간은 농토를 발아래 두고, 서귀포 바다쪽을 향해 무한히 확장돼 열리면서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내장재는 모두 중립적이고 밝은 자작나무를 써서 여유롭고 따뜻한 분위기가 나도록 했다.

이 장소를 사용하는 성도들과 둘레길에 닿는 모든 사람에게 커뮤니티와 휴식 그리고 쉼과 여유가 있는 풍요로운 곳으로 기억되고, 다시 찾는 장소로 오래 남을 것이다.

양민수 대표(아벨건축사사무소)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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