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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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전염병과 예술가

입력 2020-04-06 04:10:01


코로나19의 위협이 잠잠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거세지는 지금, 전 세계가 바이러스 공포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우주를 향해 최첨단 로켓을 발사하는 선진국들이 기본적인 의료장비 부족으로 환자들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아까운 희생자가 속출한다. 이게 안타까움을 넘어선 공포로 다가오는 것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전염병의 역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것의 실체에 대한 여러 진실을 보여준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혼란기에도 재능 있는 예술가들은 그 시기를 이겨내며 훌륭한 작품들로 세상에 위로와 감격을 선사했다. 하지만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그중 유명 화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오스트리아 출신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가 바로 그 시절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만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실레의 경우 스페인 독감이 창궐한 그 당시 국제적으로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가정적으로도 가장 희망찬 시기였다고 한다. 아름다운 아내의 임신과 곧 태어날 아기는 세상에 대한 긍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임신 6개월의 아내가 독감에 걸려 결국 페렴으로 사망하고 실레 역시 사흘 뒤 사망했다고 한다. 에로틱한 여성의 몸을 주로 그렸던 클림트는 시대를 앞선 예술관으로 당시 비평가들의 모욕과 괄시를 받았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그만의 독특한 작품 활동을 추구하면서 찬란한 황금빛 터치가 넘치는, 우리가 지금 칭송해 마지않는 예술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그러다 1918년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된 클림트는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스페인 독감에 감염돼 사망하게 된다. 예술가들의 비참한 말로가 그들의 작품에 대해 더 동정심을 갖고 보게 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예술적 성과는 그 이상이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황훈정 재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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