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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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절전 모드

입력 2020-04-03 04:05:02


인간의 뇌를 혹사시키는 것 중 하나는 ‘불확실성’이다. 직장 내 중요한 정규 회의의 진행을 맡게 됐다고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회의 준비에 매우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점차 시간과 노력을 적절히 분배하고 일정을 조정해 가능할 때에는 휴식을 취하는 등 나름 적응해 나갈 것이다. 그런데 만약 상사나 회사 상황이 너무 변덕스러워 회의가 언제 열릴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전혀 예측하기가 어렵다면 어떨까?

설령 이런 기습 회의들이 종종 예상보다 쉽게 끝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뇌는 이런 불규칙성과 예측불가능성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늘 긴장된 상태로 레이더를 세우느라 뇌가 지치면 결국 뇌가 관장하는 몸의 시스템, 면역체계가 흔들리면서 자잘한 병에도 쉽게 노출된다. 또한 불편하고 불쾌한 기분이 바닥에 깔리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과민해지면서 주변 사람들과 부딪치는 악순환을 겪기 쉽다.

인류는 언제나 위험 속에서 생존해 왔지만, 최근에는 비교적 많은 사람이 전쟁과 기아의 위협에서 살짝 비켜간 풍요를 누리며 마치 ‘보장된 일상’인 양 살아 왔다. 즉 오늘날의 우리 대부분은 맹수에게 공격당하거나, 누군가에게 끌려갈 위험 속에 벌벌 떨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 번 전 세계를 위협하는 불확실성에 노출됐고,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위기에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정보와 교육은 여러 기관에서 제공하고 있으니, 여기에서는 하나만 더 덧붙이고 싶다. 우리의 뇌는 이런 ‘불확실성’에 노출된 시간만큼 ‘절전 모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대한 나의 에너지를 아끼고 내 몸과 주변을 챙겨야 한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들 하지만, ‘지구의 날’이 있는 지구의 달이기도 하다. 지구촌 한 등 끄기 캠페인처럼, 시끄럽고 과도한 자극으로부터 나의 뇌도 잠시 쉴 수 있는 각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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