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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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루틴은 나의 힘

입력 2020-03-25 04:10:01


초등학교 때 일이다. 개인위생을 중시하셨던 아버지가 어느 날 비누와 수납 바구니를 사 오셔서 가족들에게 나누어주신 적이 있다. 이제부터는 각자 자신의 것을 이용하라고 하셨다. 어느 날 화장실에 갔다가 별 생각 없이 아버지의 비누를 썼다. 사용 후 비누를 대강 올려놓았다. 그땐 몰랐지만 아버지에게는 비누를 놓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으셨다. 물기를 빨리 마르게 하기 위해 사용 후에는 비누를 세워놓으셨다. 이 사실을 모르고 대강 놓았던 나는 그날 야단을 맞았다.

사실 지금도 비누란 모름지기 어떻게 놓여 있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 성격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하루의 삶을 의식(儀式)처럼 사시는 모습에 대한 기억이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모든 일상의 일들을 나름대로의 규칙과 순서에 의거해 행동하셨다. 일어나고 운동하고 목욕하고 출근하는 시간이 항상 일정하였다. 시간만 일정한 게 아니라 이를 행하는 순서도 정해져 있었다.

반면 생활습관이 자유분방했던 나는 규칙적인 삶과는 거리가 꽤 멀었다. 그때그때의 방식에 맞추어 사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서서히 일상에 루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규칙적으로 하는 일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어느 순간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매일 일기와 몇 편의 글을 쓰고, 몇 페이지의 책을 읽으며,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한다.

‘루틴의 힘’이란 책에 보면 문인들이 가지고 있는 루틴이 소개된다. 톨스토이는 60년간 일기를 썼고, 헤밍웨이는 하루에 500단어를 썼으며 하루키는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와 수영을 하고 하루에 다섯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원고지 20매를 쓴다고 한다. 물론 나는 이런 문인도 아니고,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지만 하루의 시작과 끝에 정해진 루틴이 있다는 사실이 삶에 안정감을 준다. 반복되는 루틴이 갖는 일상의 힘을 느끼는 요즘이다.

문화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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