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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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2월 17일] 같은 신앙, 같은 고백

입력 2020-02-17 00:10:01


찬송 : ‘사랑하는 주님 앞에’ 220장(통 278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빌레몬서 1장 15절


말씀 :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과 빌레몬이 시무하는 골로새 교회가 각별한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각자 행하는 일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서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쪽이 더 강해서, 또는 어느 한 쪽이 상대적으로 더 권위적인 위치에 있어서 기질이나 분위기를 이끌고 이끌려가는 게 아닙니다. 먼저 믿은 사도 바울이 교회의 방향을 이끄는 것은 당연하지만, 모두 같은 신앙을 공유하며 자라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바울의 편지를 받는 빌레몬은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의 주인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교인인 빌레몬 집에서 나온 오네시모는 바울에게 갔습니다. 그의 탈주는 자유를 향한 갈망이었지만, 로마 시대의 사고방식으로는 용납되기 어려운 잘못이었다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권면해 다시 빌레몬에게 돌아가게 하면서 이 편지를 씁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벌어진 일이 우연이나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라 고백합니다. 자칫 오네시모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지만 과감히 돌려보내며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골로새 교회도 같은 신앙을 가지고 사도 바울과 동일한 고백을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망친 노예의 말로는 뻔합니다. 여러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듯 십자가형에 처하거나 노예만 고문하는 전용 공간에서 죽을 때까지 고문을 받습니다. 이런 게 당연한 문화에서 어쩌면 사도 바울의 고백은 어처구니없는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오네시모 그는 노예지 다른 존재가 아니다’라고 한들 그 사회에서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 편지는 빌레몬이라는 주인 한명에게만 읽혀지는 게 아니라 온 교회가 함께 듣고 있습니다. 누군가 코웃음을 친들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이죠. 그러나 그런 모습에 신경 쓰지 않은 채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사도 바울과 빌레몬의 골로새 교회는 동일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우리와 같은 성도들에게 주요(主要)합니다. 다른 환경, 다른 출신, 다른 생각으로 살던 자들이 한 말씀, 한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같은 고백을 하는 교회,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하나님께 감사하면 그 감사가 나의 감사가 되고, 누군가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면 우리도 그것을 찬양하며, 누군가가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에 춤을 추면 스텝을 밟아주지는 못할망정 그 고백을 평가하거나 우습게 여기지는 말자는 겁니다. 그것이 말씀을 대하고 하나님을 고백하며 함께 자라가는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모습입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같은 환경 같은 성격 같은 출신으로 난 자가 아니나 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가 되게 하셨으니 그 삶을 감사함으로 누릴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진혁 목사(뿌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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