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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성경 속의 색깔 ‘빨강’] 너희 죄가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다

입력 2020-01-31 06:15:02
픽사베이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아내에게 조롱당하는 욥’. 의인 욥은 왜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아내는 화사하고 풍성한 붉은 옷을 입고 욥을 조롱한다. 프랑스 에피날 미술관 소장.



2020년 하반기부터 우리나라 여권 표지가 초록에서 남색으로 바뀐다. 현재 우리나라 여권 색상과 같은 녹색은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들이 주로 사용한다. 이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초록색 여권을 사용하는 나라는 이슬람 국가가 대다수’라며 표지를 파란색으로 변경해 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색채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색채는 인간의 심리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단순히 존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린 매일 수많은 색채를 보고 느끼며 살아간다. 색채에 대한 느낌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오래전부터 형성된 집단 무의식의 태고유형이 있다.

내 이름은 빨강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나는 숨기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섬세함은 나약함이다. 무기력함이 아니라 단호함과 집념을 통해 실현된다. 나는 나 자신을 밖으로 드러낸다.”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 ‘내 이름은 빨강’에서 빨강을 묘사한 문장이다. 그가 말했듯이 빨강은 사람들의 감각과 열정을 자극하고 자기 확신과 자신감을 강하게 전달하는 색이다. 빨강은 사랑을 상징하는 동시에 분노와 복수, 혁명과 전쟁을 떠올리게도 한다.

성경에서 빨강이란 색채는 어떤 의미로 묘사됐을까. 빨강의 의미로 사용된 ‘붉다’는 히브리어로 ‘아돔’이다. 성막의 웃덮개를 만드는 붉은 물 들인 해달의 가죽(출 25:5, 26:14, 35:7) 특정 짐승의 색(민 19:2, 슥 1:8, 6:2, 계 6:4) 인간의 피부색(창 25:25, 삼상 16:12) 눈의 색(창 49:12, 잠 23:29) 붉은 상처(레 13:19, 24) 포도주(잠 23:31) 물(왕하 3:22) 죄(사 1:18)에 묘사됐다.

성경에서 빨강(붉은색)은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가 있다. 긍정적 의미에서 빨강은 죄에 대한 회개, 그리스도의 보혈, 어린양의 희생,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심판자 메시아, 성령의 불 등을 상징한다. 예수님이 인류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의 상징이 가장 크다. 생명을 부여하고 더러움을 정화하며 영혼을 성스럽게 하는 보혈은 정신의 힘과 속죄의 증표다.

부정적 의미의 빨강은 불순과 폭력, 죄, 전쟁, 사탄 등을 상징한다. 특히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는 말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두렵고 엄격하지만, 회개한 자에 대한 사랑과 용서는 너그럽고 따뜻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신 주님은 본질적으로 범죄에 익숙한 인생을 향해 불꽃 같은 분을 참으시고 용서하신다. 요한계시록에서 묘사된 ‘붉은 용’과 ‘붉은 말’은 사탄과 전쟁을 상징한다.

구원의 예표


문설주에 바른 ‘붉은 피’, 라합의 창문에 걸린 ‘붉은 동아줄’, 야곱이 에서에게 만들어준 ‘붉은 콩죽’, 사탄과의 마지막 영적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위풍당당하게 ‘붉게 물든 옷’을 입고 오시는 메시아. 성경에 빨강(붉은색)이 묘사된 장면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생명의 길, 구원의 길로 인도한 불기둥 역시 붉은색이었을 것이다.

빨강은 구원에 대한 묵상을 우리 내면에서 끌어내는 색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붉은 피가 구원의 붉은 꽃을 피워냈다.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이 있을 때, 이스라엘의 장자를 구해준 징표는 문설주에 바른 양의 붉은 피였다.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출 12:7) 죽음의 사자가 이집트 전역을 휩쓸 때 어린양의 피가 있는 집은 넘어가고 피가 없는 집에 죽음의 재앙을 가져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붉은 피가 그들의 생명을 보호해주고 그들에게 해방과 자유의 길을 제공한다고 여겼다.

가나안 정탐꾼을 숨겨준 라합도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 성을 쳐들어올 때 ‘붉은 줄’을 집 창문에 매달아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붉은 줄은 그리스도를 말미암은 속죄의 피를 예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수 2:18)

붉은 줄은 정탐꾼이 피신할 때 사용했던 바로 그 줄이었다. 정탐꾼의 생명을 구원해 준 줄이 라합과 그 가족을 구원하는 줄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반드시 살려야 할 자를 안내하는 표식이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와 라합이 성벽에 매달았던 붉은 줄이 십자가의 보혈을 상징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것들이 그들을 구원했기 때문이다. 또 에서가 장자권과 맞바꾼 죽의 원래 이름은 ‘붉은 콩죽’이었다.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창 25:30) 성경은 에서의 매우 정열적이고 야성적인 성품을 붉다고 묘사했다.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창 25:25)

빨강은 심판자의 모습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에도 드러난다. 성경은 메시아가 사탄과의 마지막 영적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위풍당당하게 돌아오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사 63:1~2)

빨강(붉은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희생과 고난, 승리의 색으로 고난주간 주일에, 성령의 불을 상징해 성령강림 주일에, 순교의 피를 상징해 순교한 성도들을 추모하는 예배에 교회력 색깔로 사용한다. 빨강은 따뜻한 색채 중 가장 대표적인 색채다. 이젠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대속을 위해 흘리신 보혈, 어떤 환경 속에서도 너를 구하겠다는 구원의 징표로 다가온다.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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