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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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휴일] 엄마에게 쓰는 편지

입력 2020-01-16 19:35:01


엄마 돌아가신 나이 47
엄마 떠올려 시 쓰고 있는 내 나이 57
엄마보다 열 살을 더 사는 중입니다

내가 무럭무럭 늙어갈수록 엄마는 점점 더 젊어지겠지요
어릴 적 엄마는 나 잘되라고 종아리 아프게 때리시더니
돌아가신 뒤로는 등짝과 아랫배를 달콤하게 때리십니다

햇살 어지러운 봄날
옛집 뜰에 핀 하얀 목련은 엄마가 부르는 노래이지요?
공활한 가을 하늘 펄럭이며 나는 저 기러기 엄마가 쓰는 필체이지요?

성하의 녹음은 엄마의 여전한 농업이시고
생전에 못다 운 눈물 저리 눈발로 분, 분, 분, 내려서는
층, 층, 층, 삼동의 들녘 캄캄하게 채우고 있는 거지요?
꽃에게서 나는 엄마의 음성을 듣고 새에게서 나는 엄마의 안부를 읽어요

어느 날 굽어가던 키가 땅에 닿을 때
늙은 자식이 젊은 엄마를 안고 울 날이 올 거예요
그때까지는 매연의 도시에서 뻘뻘 그리움을 흘리며
하얀 노래 섧게 듣고 곡선의 필체 새겨 읽어야 합니다

이재무 ‘데스밸리에서 죽다’ 중

“엄마 돌아가신 나이 47, 엄마 떠올려 시 쓰고 있는 내 나이 57….” 시인인 아들은 어느덧 그 옛날 세상을 떠난 엄마보다도 나이를 더 먹어 이제는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어린애처럼 주야장천 엄마가 보고 싶다. 그럴 때면 하얀 목련을 보며 저것은 엄마가 부르는 노래일 거라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기러기의 행로는 엄마의 필체일 거라고 상상하곤 한다. 지난 10년이 그랬듯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아들은 엄마보다 더 늙어갈 것이다. 언젠가 “굽어가던 키가 땅에 닿을 때” 아들은 젊은 엄마를 안고 울게 될 것이다. 그때 그가 흘릴 눈물은 연연한 그리움이 키운 절절한 슬픔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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