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의 저녁 위로
흰 눈이 싸락싸락 내리고
바람이 멎는다
겨울도 깊어지면
소리가 없는 것
산 아래 마을에서
패 다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홀홀히 털고 웃으며
미리 만드는 무덤
그 속에 악플 들어가지 않아
생애로부터 잡풀 솟지 않고
뜻 없이 흰 눈만 쌓여있게 되기를
장재선의 ‘기울지 않는 길’ 중시인은 말한다. 겨울이 깊어지면 소리도 사라진다고. “흰 눈이 싸락싸락” 내리는 겨울밤을 떠올린다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시인은 언젠가 자신의 육체가 누워있을 무덤을 상상하며 “생애로부터 잡풀 솟지 않고 뜻 없이 흰 눈만 쌓여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이것은 미련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어떤 얼룩도 남기고 싶지 않다는 바람일 것이다. 시집에는 이 작품 외에도 가슴을 따뜻하게 데우는 작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 “여기 담은 공존의 꿈, 시간 들여 살펴준다면 가문의 영광이겠습니다”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