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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윤중식] 좌우지간 초갈등사회를 풀자

입력 2019-11-23 04:05:02


갈(葛)과 등(藤)나무는 같은 덩굴 식물이다. 칡은 왼쪽으로, 등나무는 오른쪽을 타고 오른다. 정반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 둘이 만나면 도저히 풀 수 없을 정도로 줄기들이 뒤엉킨다. ‘가뭄에 비가 와도 개미는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개미는 항상 맑은 날을 좋아한다. 비가 와서 물이 고이면 생계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개미의 입장은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가뭄이 심해서 산천초목이 말라 죽고 사람이나 동물이 마실 물이 없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가뭄에는 비가 와야 한다는 말이 맞지 않을까. 개미는 비가 오는 동안 일을 잠시 접고 쉬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비가 오면 개미뿐 아니라 모든 동식물이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각자 입장과 생각이 다르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을 전부 만족시키는 방안은 이상적인 발상일 뿐이다. 우리는 다만 이상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선각자들의 주장은 하루아침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위대한 생각이 이상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둥글다’고 했던 콜럼버스는 처음엔 완전히 매장을 당했다. ‘나는 옳고 저들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태도다. 그래서 사회는 늘 시끄럽다. 누군가 자기 생각이 옳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선각자의 생각은 틀렸다고 깎아내리고 끌어내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진보와 보수, 빈부, 세대, 노사, 남녀, 지역 갈등이 범람하는 초갈등사회다. 동양사상의 논리를 보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저 음과 양이 싸우는 것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총체적 국정실패 이게 나라입니까?’라는 구호를 내걸고 무기한 단식투쟁 중이다. 선각자와 지도자는 늘 외롭다.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한다. 그들은 슬프고 고독했다. 뭘 모르는 사람들이 선각자들을 억누르려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도 당시 교황청을 비롯한 다수파에 의해 심한 탄압을 받았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최근 펴낸 ‘통계로 보는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은 갈등 공화국’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사회갈등지수(1.03)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32위로 바닥권이다. 한국은 낮은 사회적 신뢰도(27%)로 인해 1년에 최대 246조원의 갈등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갈등 해소 비용으로 국민 1인당 매년 900만원씩 지급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신뢰 수준이 OECD 회원국 평균(57%) 수준으로 향상된다면 경제성장률이 1.5% 포인트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고 한다.

국민의 87%는 ‘보수와 진보 이념적 갈등’을 가장 심각하게 보고 있다. 소득의 양극화 현상으로 인한 ‘경제적인 빈부 갈등’을 두 번째로 꼽았다. 사회 갈등의 원인으로는 ‘개인·집단 간 상호 이해 부족’이 28%로 가장 높았다. 갈등 당사자의 이해 부족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기능이 절실함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극단적 이기심이 아닌 상대방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함을 보여줬다.

좌우지간(左右之間)이라는 말은 어떤 주제로 한참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의견이 첨예한 대립을 보일 때, 누군가가 나서 그 분위기를 조정하거나 잠시 뜸을 들여 새 국면으로 전환하려고 할 때 쓰인다. 문자 그대로 좌와 우의 사이란 뜻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양자택일의 문제가 생겨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과 색채를 선명하게 하려고 되도록 좌나 우의 제일 가장자리를 확보하려고 한다. 여기에서 극좌·극우가 태동한다. 이런 극성과 극단이 지배하는 대립이 첨예한 세계에서는 어중간한 곳에 서 있으면 회색분자로 몰리거나 박쥐와 같은 기회주의자 신세가 된다.

좌우지간 갈등은 해소하고 풀어야 한다. 21세기는 문자와 음향과 영상이 두루 하나로 뭉치는 매체 융합의 시대다. 국민일보는 6·25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앞두고 다음 달 19일 ‘초갈등사회 한국교회가 푼다’를 주제로 미션포럼을 개최한다. 교회는 촛불과 태극기를 넘어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는 말씀처럼 사람들의 감정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이해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린도전서 12:26∼27)

윤중식 종교기획부장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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