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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윤중식] 즐거운 나의 집과 조국 전 장관

입력 2019-10-19 04:05:01


1852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에서 사망했다. 31년이 지난 뒤 미국 정부는 군함을 보내 그의 유해를 본국으로 운구했다. 유해가 뉴욕에 도착하던 날 부두에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미국 대통령과 상하원 의원, 수많은 시민이 줄지어 나와 운구행렬을 맞으면서 모자를 벗고 조의를 표했다. 이날의 주인공은 정치가나 장군도, 위대한 과학자나 기업인도 아니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집 내 집뿐이리.” 이 노래의 원제목 ‘홈 스위트 홈(즐거운 나의 집)’은 영국인 헨리 비숍 경이 작곡한 곡조를 미국의 배우 겸 극작가 존 하워드 페인이 1823년 오페라 ‘클라리, 밀라노의 아가씨’에 극음악으로 차용했다.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동전 한 푼 없는 처량한 신세였을 때 만들었다.

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집도 없이 길거리를 떠돌았다. 페인은 생을 마감하기 1년 전 어느 봄날 친구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 뒤 길거리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가정의 기쁨을 자랑스럽게 노래한 나 자신은 아직껏 내 집이라는 맛을 모르고 지냈으며 앞으로도 맛보지 못하고 말 것이오.”

무엇이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일까. 출세나 명예, 로또복권 당첨도 아니다. 지난해 로또복권 1등 1인당 평균 당첨금액은 19억6100만원이었다. ‘인생 역전’까지는 아니지만 새로운 삶을 사는 데 부족함이 없는 액수임에도 일부 당첨자는 한순간에 쥔 거액의 돈을 사업이나 주식에 투자했다가 모두 잃거나 유흥이나 도박으로 탕진해 범죄자로 전락하는 일이 요즘도 비일비재하다.

최근 환갑을 앞둔 A씨는 동생을 죽인 살인자로, 마흔 문턱에 선 B씨는 모든 돈을 탕진한 채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좀도둑 신세로 전락했다는 뉴스가 시선을 끌었다. 수년 전 로또 1등에 당첨돼 세금을 뺀 당첨금 8억여원을 손에 쥔 A씨. 그는 친동생 살해 혐의로 체포돼 세상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그는 당첨금 3억원을 누나와 동생 2명에게 나눠준 뒤 식당을 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점은 경영난에 시달렸다. 그러자 A씨는 자신이 준 당첨금을 보태 산 동생의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4600만원을 빌려 썼다. 형은 매달 25만원의 대출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동생은 그런 형을 처음에는 이해했다. 그러나 빚 독촉이 계속되자 형제의 갈등은 점점 커졌고, 급기야 A씨는 지난 11일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동생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억대의 돈을 선뜻 줄 정도로 우애 깊던 형제에게 로또 당첨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했다.

이보다 더 많은 당첨금을 받은 B씨의 말로도 비참했다. 그는 2006년 20대 중반에 로또 1등에 당첨돼 세금을 제하고 14억원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었다. B씨는 처음에는 당첨금을 가족에게 쓰며 새 인생을 사는 듯했지만 얼마 못 가 도박장과 유흥시설을 드나들며 8개월 만에 알거지가 됐다. 그는 지난 6월 경찰에 붙잡히는 등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신세가 됐다.

가정은 행복의 공작소로 인간에게 무엇보다 소중하고 평온한 쉼터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뒤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하셨다. 영어 단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말 셋을 꼽으라면 하늘(Heaven)과 어머니(Mother), 그리고 가정(Home)이다.

페인은 집 한 채 없었지만, 이 세상에서 가정만큼 더 소중한 곳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가족의 아픔과 고통을 견디며 오로지 검찰 개혁의 불쏘시개가 되겠다는 법무부 장관도 가족의 불행이 시시각각으로 조여들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조 전 장관은 지난 14일 “원래 건강이 몹시 나쁜 아내는 하루하루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다”면서 “가족들이 자포자기하지 않도록 곁에서 가족의 온기로 이 고통을 함께 감내하는 것이 자연인으로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자연인으로 돌아간 조 전 장관의 앞날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뇌종양 입원증명서’를 내고 검찰 조사를 받는 부인과 ‘허리 디스크’로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동생에 대한 수사가 끝나지 않고 있어 검찰 개혁을 염원하는 수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간 그를 위해 화평과 행복이 회복되길 조용히 기도해본다.

윤중식 종교기획부장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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