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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열의 음악앨범’ 정지우 감독 “감정의 공감이란 귀한 일” [인터뷰]

입력 2019-08-29 04:05:01
레트로 감성의 멜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으로 돌아온 정지우 감독. 그는 “90년대 정서를 느껴보지 못한 10대 관객들도 감성적으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8일 개봉한 영화는 국내 멜로 장르 사상 최초로 사전 예매량 10만장을 돌파했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김고은과 정해인이 연인 호흡을 맞춘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에서, 특히 멜로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의 전이다. 설레고 두근대고 요동치다 이내 평온해지는, 주인공이 겪는 감정의 파노라마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야 하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정지우(51) 감독이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펼쳐 보였다. 신작 ‘유열의 음악앨범’에서다.

제목이 어딘지 익숙하다. 1994년 10월 1일 첫 방송돼 13년간 청취자의 사랑을 받은 동명의 라디오 프로그램명이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이 프로그램이 시작되던 날 처음 만난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제과점을 물려받은 미수(김고은)와 아르바이트생 현우(정해인)는 함께 일을 하며 서로를 마음에 품게 되지만 얄궂은 인연은 자꾸만 엇갈리고 만다.

영화는 아날로그 세대의 사랑 이야기다. 라디오 삐삐 PC통신 등 90년대 감성이 가득하다. 우리네 아련한 청춘의 단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이별했던, 그 시절의 소박한 기억들을 하나둘 소환해낸다. 러닝타임 122분을 지나면서 점점 몽글몽글해지는 마음이 새삼스럽고도 반갑다. 멜로라는 장르가 지닌 힘이다.

정 감독으로서는 ‘사랑니’(2005) 이후 14년 만에 선보이는 멜로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우리 산업 환경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건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랜만에 멜로를 하면서 개인적인 반가움도 있었다. 액션을 찍을 땐 조마조마한데 이런 장르는 현장에서 안도감이 들더라”고 웃었다.

정 감독은 “예전보다 더 쫄보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난이도가 높은 시나리오였어요. 1인칭 서사의 규칙이 또박또박 지켜지지 않거든요. 미묘한 내면의 언급이 주를 이루는데, 그러면 인과관계를 따라오기가 어려워요. 요즘 관객들은 공감 세포가 적어졌다는 전제하에, 눈빛으로 표현하기보다 대사로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죠.”

두 주연배우가 싱그러운 합을 이룬다. 여러 로맨스 작품에서 다채로운 얼굴을 선보인 김고은과 정해인이 호흡을 맞췄다. 김고은과는 ‘은교’(2012)에 이은 재회. 정 감독은 “캐스팅 운이 좋았다”면서 “멜로 영화의 신뢰감은 오롯이 배우에게서 나온다. 관객들에게 좋은 관람 경험을 가진 두 사람이 함께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음악이다. 유열 신승훈 이소라 핑클 루시드폴 등의 90년대 대중음악들이 적재적소에서 서사의 행간을 채운다. “가사와 이야기를 연동시키는 게 중요했어요. 그렇다고 너무 설명적이어선 안 됐죠. 가사로 다 말하면 배우가 보이지 않거든요. 선곡 작업이 쉽지 않았지만, 90년대 문화가 얼마나 번쩍거렸는지 담고 싶었어요.”

정 감독은 “요즘은 사회 분위기상 더 세고 강력한 자극에 익숙해진 상태가 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렇기에 이 시대에 멜로 감성이 필요한 것이라고. 그는 “공감의 영역이 줄어드는 세상에서, 누군가가 기뻐하거나 눈물 흘리는 순간을 함께하는 일이 점점 귀해진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멜로나 가족 영화, 휴먼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통해 공감 세포를 되살리는 기회를 얻는 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영화를 보면 마음이 훈훈해지더라고요(웃음). 우리 영화 시사회 무대인사를 가보면 관객들의 얼굴이 보여요. 눈가가 촉촉해진 채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죠. 정말, 좋은 일이 아닌가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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