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에게 대놓고 욕을 한 콩나물국밥집 할머니가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 광고 영상물에 나왔던 욕쟁이 할머니는 연출된 것이고, 이는 실제 상황이었다. 1970년대 전북 전주에서 벌어진 일이다. 박정희가 지방 시찰차 전주에 와서 하룻밤을 묵었다. 안날 밤에 거나하게 술을 마셨는지 아침에 해장국을 찾았다. 전주에 콩나물해장국이 유명하니 이를 먹자고 했다. 경호원이 콩나물해장국집을 찾았다. 욕쟁이 할머니가 하는 가게였다. 포장을 부탁하자 할머니가 욕을 날렸다. “썩을 놈들, 발이 없냐? 와서 처먹어.” 경호원이 숙소로 돌아와 박정희에게 보고했다. “배달이 안 된답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가지.” 그렇게 해 박정희가 직접 콩나물해장국집에 갔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경호원이 콩나물해장국집에다 대통령이 간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박정희는 여느 손님처럼 식당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할머니는 콩나물국밥과 찬을 내려놓으며 박정희를 빤히 보았다. 눈에 익은 얼굴이었던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할머니는 주방으로 가서 달걀 프라이를 가져왔다. 이 가게는 국밥 안에 든 달걀 외에 달걀 프라이를 따로 낸다. 식탁에 이미 달걀 프라이가 놓여 있는데 할머니가 또 가져온 것이다. 박정희 앞에다 달걀 프라이를 툭 던지며 할머니는 이렇게 욕을 날리었다. “이 썩을 놈은 어찌 박정희를 똑 닮았냐. 옜다, 달걀이나 하나 더 처먹어라.”
욕쟁이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그놈은 대통령이 아니었다”고 하셨고, 전주의 호사가들은 할머니가 박정희인 줄 알고 욕을 한 것이라고 지금도 주장하고 있다. 어떻든, 박정희 면전에다 시원하게 욕을 했던 대한민국 국민은 이 할머니가 유일할 것이다. 박정희가 없는 자리에서도 박정희를 욕하면 감옥에 가야 하는 시대였으니 할머니의 욕은 전설로 남게 됐고, 전주에서 콩나물해장국을 먹을 때에는 이 욕쟁이 할머니 이야기를 입에 올려야 콩나물해장국이 더 맛있어진다.
박정희 시절에 긴급조치 위반으로 많은 이들이 법적 처벌을 받았다. 단지 박정희 욕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간 사람들도 있다. “박정희는 XXX다” “박정희는 깡패들만 양성해 나라를 망치게 했다”고 소리쳤다고 8개월 징역을, “박정희 그 XX 육군 소장이지 별거냐. 그 XX 생김새를 봐라. 족제비 낯짝같이 생기지 않았느냐”고 말했다고 1년6개월 징역을 때렸다. 유신헌법에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적혀 있다. 그러나 실제로 국가권력은 박정희 개인의 것이었다. 이런 게 독재이다.
요즘 정치판에 막말이 떠돈다. 대통령에 대한 막말도 예사이다. 그래도 잡혀가는 사람은 없다. 민주공화국에서는 이게 정상이다. 박정희 시대의 독재는 더 이상 없다. 정치판의 막말은 대놓고 하는 욕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조롱과 희화이다. 비판의 한 방법이니 상대에게 심한 모욕감을 주지 않으면 허용하는 것이 관례이다. 다만, 질병이나 사회적 약자를 비유하면 안 되고, 지역이나 계층 갈등을 유발하면 안 된다. 또 하나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막말의 방향이다. 시민이 정치인에게 해도 되나, 정치인이 시민에게 하면 안 된다.
시민은 정치인을 희화하고 조롱할 수 있다. 시민의 권리를 대신해 행사하는 정치인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한 방법이다. 반면에, 정치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시민을 희화하고 조롱할 수 없다. 시민의 대리인이 그 주인인 시민을 감시하고 비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 시민은 정치인에게 전대가리니 노가리니 닭이니 쥐니 재앙이니 나베니 해도 된다. 그러나 정치인이 시민을 향해, 반대편 정당의 지지자라 해도, 태극기모독부대니 친일파니 빨갱이니 문빠니 달창이니 하면 안 된다. 이건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식 수준의 문제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자유한국당 나경원 대표가 문재인정부 지지자들에게 문빠니 달창이니 한 것은 단어 자체에도 문제가 있으며, 더 근본적으로는 정치인이 감히 주권자인 시민에게 막말을 했다는 것에서 민주공화정의 정신을 훼손한 일이라고 봐야 한다. 콩나물국밥집 욕쟁이 할머니였으면 이런 욕을 날렸을 것이다. “썩을 것들이, 국민이 뽑아줘서 먹고살게 해주면 고맙다고 큰절이라도 해야지, 어데다 욕을 하고 XX이여. 콱.”
황교익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