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는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의 청구에 따라 K스포츠재단 김필승 전 사무총장을 청산인 직위에서 해임했다. 2년 전인 2017년 3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설립허가 취소 처분 이후에도 해산신고 등 아무런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중립적 위치의 변호사가 새 청산인이 되면서 직원과 사무실 정리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누군가에겐 국정농단의 소굴, 누군가에겐 탄핵의 성지였던 K스포츠재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겐, K스포츠재단은 예나 지금이나 직장이었다. 최순실의 측근도 아니고 내부고발 의인도 못 되는 이가 지금 4명 남아 있다. 재단을 존속시켜 일하게 해 달라는 이들에게 한쪽은 부역자라 욕했고 다른 쪽은 ‘세월호 팔아 장사하느냐’고 욕했다. 최근에 기자가 찾아갔을 때, 이들은 법원 결정문을 붙들고 “사형 선고를 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서로 얼굴을 보며 “유언을 하라는 느낌이다”라고 했다.
박재호 사원은 심장 질환자의 운동 프로그램을 설계해 주던 병원 연구직이었다. 2016년 6월 입사한 K스포츠재단은 정규직으로서는 첫 직장이었다. 최순실이 누군지 몰랐고 박근혜는 TV에서나 본 사람이었는데, 악마의 단체에서 일하는 이가 돼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이 운동을 하도록 돕는 게 그의 꿈이었는데 정작 스스로가 활력을 잃어 갔다. 괴로움 끝에 체육계 은사들을 찾으면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오기로 됐었다는데, 좋았겠다”는 말을 들었다.
H대리는 K스포츠재단에서 일해서 파혼을 당했다. 직장의 이름이 최순실과 함께 신문방송에 오르자 상견례 날짜가 미뤄졌다. 재단이 검찰 압수수색을 당하니 예비 장인장모가 결혼을 반대했다. 직장을 관두고 싶지 않더냐고 묻자 그는 “보람은 있었다. 모두 바로잡히리라 기대했는데 순진했다”고 말했다. 밤잠 설치며 목포에서 태권도 시설 공사를 진행한 일, 사흘간 집에 못 가며 K스포츠클럽 기획서를 작성한 일을 그는 오래 말했다.
강지곤 차장은 국가대표 시각장애인 스키 선수를 끌어주는 ‘가이드 러너’였다. 장애인 선수들은 넘어지길 반복해 이가 다 빠져 있었다. 그는 K스포츠재단이 힘든 운동선수들을 도와줄 수 있다고 믿었는데, 넘어진 건 자기 자신이었다. 청산 공청회에서 문체부의 한 간부가 뱉듯 한 말을 그는 아프게 기억한다. “이것 때문에 우리 공무원들이 얼마나 골치 아픈 줄 아나.” 급히 설립허가를 내줬던 곳도 문체부였다. 강 차장은 “제겐 일터입니다” 하질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재무를 담당해온 이철용 부장은 아직도 뉴스 보기가 겁나고 공황장애 약을 먹어야 한다. 그는 국정농단 사태 당시 누군가가 출연금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상당 액수를 장기 저축보험에 넣어 뒀다. 재단 자산이 2년간 40억원 가까이 줄어든 이유를 묻자 그는 “과거 롯데그룹으로부터의 출연금 70억원을 반환했는데, 32억여원을 증여세로 징수당했다”고 말했다. 그 이외의 비용은 건물 임대료와 인건비 등인데, 금융수익 범위 내에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왜 꼭 너희가 그곳에서 일을 해야 하느냐며, 삭감된 인건비에도 세상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청산 결정으로 목적사업비를 못 쓰는 직원들은 각자 지갑을 열어 소외계층을 찾았다. 서울 중구 무학봉체육관에서 발달장애인들에게 농구를 가르칠 때엔 오랜만에 모두가 웃었다. 서울 서대문농아복지관은 지난해 말 자신들의 소식지에 K스포츠재단 사람들을 실었다. 복지관은 “1년간 매주 꾸준히 아동체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셨는데,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했다”며 고마워했다.
4명은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뇌물이었냐 강요였냐만 남았을 뿐, 재단 설립 자체가 그릇됐다는 판단을 돌릴 길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떳떳한 돈을 버는 숭고한 일터란 따로 있을까. 온갖 적폐를 청산하고 남겨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정의로워졌을까. 재단에 다녀온 날 밤에 금융권의 높은 사람을 만났다. “기업이 살아야 언론도 살고 모두가 살지. 사실 이 나라 애국은 삼성이 다하는데, 검찰은 수사나 하고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것으로 부역을 피할 수 있으려나 생각했다.
이경원 경제부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