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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하주원] 마약 생각

입력 2019-03-06 04:10:01


요즘 마약에 대한 생각이 많다. 버닝썬에 대한 뉴스가 쏟아지고 마침 마약의 특징과 역사에 대해 소개한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를 재미있게 읽고 더 그렇다. 나는 매일 향정신성의약품과 함께 지내고 처방하고, 마약류 통합 관리 시스템(NIMS)에 접속한다. 지난해 엄격해진 NIMS에 적응하느라 명절에도 나와서 고생했는데,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작은 의원이나 약국에서 전산화를 위해 장비도 각자 구입하고, 매일 전산 보고하는 것은 꽤 벅찬 일이었다. 도대체 이걸 누가 빼돌린다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마약 관련 범죄가 늘어나고 우리 생활에 더 깊숙이 스며드는 상황을 보니 이런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겠구나 수긍을 한다. 일부 개인의 불법적 유통과 중독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사회에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평범한 의사나 약사들이 피곤해졌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싶었다. 개인의 삶이 사회적 문제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우니까.

최근 문제가 되는 클럽의 사건은 사실 마약의 문제로 논하기도 어렵다. 모든 것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만약 누군가에게 강제로 또는 모르는 사이에 동의 없이 투여했다면 그것은 마약이 아니라 보약이라도 잘못되고 위험한 일이다. 성폭행이 나쁘다고 모든 성관계를 나쁘다고 할 수 없듯이 마약보다 나쁜 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동의 없이 가하는 폭력, 그리고 영원히 비밀로 덮어두기 위한 시도이다. 그 과정에서 코카잎이나 메스암페타민은 책임이 없을까.

결국 개인의 중독은 사회적 문제에서 온다. 심지어 마약을 나라에서 권고하던 때도 있었고 다시 금지되기도 했던 역사의 배경에는 제국주의, 빈부격차, 카르텔, 노동착취 등 사회의 수많은 어둠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의학적으로는 마약에 중독되면 벗어나기 어려운 반면, 치료를 위해 필요할 때도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마약이 인간의 평등을 저해하고 위계, 즉 피해자와 가해자,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는 범죄와 관련돼 있음이 분명하다. 만약 이런 거대한 역사, 묵은 사회적 구조를 해결할 수 없다면 개인의 중독부터 해결할 수 있도록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마약 중독 치료기관이나 재활기관은 아직 너무나 부족하다.

하주원 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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