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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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우리는 괜찮지 않다

입력 2019-01-18 04:05:01


며칠 전 SNS에서 충격적인 포스팅을 봤다. 한 대형마트의 잡화판매대에서 성인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법한 코스튬을 판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장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작성자의 포스팅 속에는 민망한 코스튬 차림의 여성들 사진이 즐비했다. 문제의 대형마트는 최근 본가 근처에 개장해서 아이들을 동반한 동생 부부가 이미 방문한 적 있는 곳이었다. 정말이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즉시 대형마트의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본사 고객센터에 불만사항을 접수한 뒤 지점 고객센터로도 연락했다. 지점 고객센터에서는 잡화판매대를 관리하는 사무실 번호를 가르쳐주었다. 이후로도 몇 통의 전화를 더 건 끝에 잡화판매대를 관리하는 매니저와 통화할 수 있었다. 나는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하며 전화 건 이유를 밝혔다. 그러자 매니저는 차분한 어조로 대형마트의 본사에서 론칭한 그 잡화점의 개별 매장에서는 이미 여러 종류의 성인용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마 성인용품도 얼마든지 양지에서 판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물건이 판매되고 있는 장소는 여느 상권의 단독 매장이 아니라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 고객들이 나들이를 겸해 장을 보러 들르는 대형마트 내 잡화판매대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 코스튬은 단순한 속옷도, 교복도, 간호사 유니폼도 아니잖아요. 매니저님의 아이들이 그런 걸 골라 들고 계산대 앞으로 간다고 상상해보세요. 정말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묻자 매니저는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화요일, 나는 대형마트 측으로부터 문제가 된 코스튬 상품을 모두 철수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 말고도 다수의 고객이 항의한 결과일 것이다. 어째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끝도 없이 반복되는 것인지, 생각할수록 답답하기만 하다. 특정 직업군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편견과 혐오를 조장할 수 있는 상품을 마트에서 판매하면 안 된다는 걸, 상품 구성을 결정한 이들은 정말 몰랐을까. 도대체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을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인데도 우리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정말 괜찮은 걸까.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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