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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얘기도 사탕 내밀 듯 전하고 싶어”

입력 2018-12-08 04:05:01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를 낸 정세랑 작가는 전자책 애용자다. 그는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여행 갈 때 전자책 단말기를 챙기면 ‘책 1000권이 주머니에 들어있다’는 기분에 든든하다”고 말했다. 윤성호 기자




자기 소설을 ‘입문자용’이라고 말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데뷔 8년 만에 첫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창비)를 낸 소설가 정세랑(34)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독자 모임에 온 고등학생들이 ‘작가님 책 읽고 다른 작가에게도 관심 갖게 됐다’고 말할 때 정말 기쁘다”면서 “내 작품이 독자들에게 입문자용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0년 장르문학 잡지 ‘판타스틱’에 단편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한 정세랑은 무거운 주제도 기발한 상상력으로 발랄하게 그린다. 표제작 ‘옥상에서 만나요’는 작가의 이런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너저분한 접대문화와 성희롱이 난무하는 회사에서 여직원 ‘언니들’의 위로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언니들에게 짝을 구하는 비밀을 알아내 간신히 남편을 만나는데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전위예술 작품 형상이고, 다른 사람의 좌절과 절망을 먹어치우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특이한 존재다.

정세랑은 “밤에 입술에 면도날을 물고 거울을 보면 남편 얼굴이 보인다는 학교 설화를 모티브로 한 얘기”라며 웃었다. ‘옥상에서 만나요’는 환상이 주조를 이루지만 묘한 쾌감과 위로를 준다.

작가는 “어릴 때 ‘슈퍼 그랑죠’ 같은 TV 만화영화를 열심히 봤고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도 푹 빠졌던 ‘피카츄’ 세대”라며 “만화나 SF 환상물을 좋아하다 보니 소설에도 그런 요소가 많이 나타난다”고 했다. 역사교육과 국문학을 복수전공한 뒤 출판사 편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2년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정세랑은 “나는 한 사람의 내면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는 편”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수록작 ‘이혼 세일’은 이혼을 앞둔 주인공이 친구들을 불러 자기 물건을 파는 풍경을 그린다. 다양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이혼 이야기가 유쾌하면서도 따듯하게 전개된다. 수록작 ‘웨딩드레스 44’에서 볼 수 있듯 가부장제를 다룰 때도 경쾌하다. 작가는 “나는 (현실에) ‘코팅’을 많이 하는 편이다. 충격을 주느냐, 은은하게 스미느냐 하는 전략의 차이일 것이다. 심각한 이야기도 달콤한 사탕을 내밀 듯 부드럽게 하고 싶다. 어쩌면 더 음흉한 전략인지 모른다”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세랑이 지금까지 발표한 장편소설 6편에는 인물이 약 260여명 나온단다. 그는 “주변에 자기 이야기를 선물해주거나 재미있는 사람을 소개해주는 친구들이 참 많다”며 “그런 사람들을 소설에 등장시키다 보니 인물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인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민은 “독자들이 소설을 너무 빨리 읽는다”는 것이다. 단숨에 읽을 만큼 문장이 짧고 전개가 빠르기 때문이다.

2013년 성장소설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병원을 무대로 한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판타지를 도입해 대중성 강한 소설을 쓰면서도 문단의 인정을 받고 있는 셈이다. 정세랑은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에 서서 한국 소설의 가장자리를 넓혀 나가고 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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