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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 스리랑카인’으로 들끓는 여론, “고의성 묻기 어렵다”

입력 2018-10-11 04:05:01
 
‘고양 저유소 화재’ 사고의 피의자인 스리랑카인 A씨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비판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사고의 핵심 원인은 주요 시설의 안전관리 부실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있는데 책임을 외국인 노동자에게 뒤집어씌운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스리랑카인에게 오히려 상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는 목소리도 나왔다.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고양 저유소 화재 사고의 책임을 스리랑카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라’는 취지의 게시물이 수십건 올라와 있다. 한 청원자는 “300원짜리 풍등 하나에 저유소가 폭발했다면 안전관리 책임자의 과실이 더 크다”며 “평범한 이웃 노동자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직장인 유모(30)씨는 “누군가 책임은 져야 하는데, 그것을 개인에게만 전가한다고 생각한다”며 “저유소가 풍등 하나로 날아간다는 것 자체가 관리 시스템의 책임이 더 크다는 증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 청와대 국민청원자는 “(스리랑카인은) 위험 시설인 저유소의 결함 및 취약점을 밝혀 많은 국민의 생명을 구했으니 상을 줘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이날 경기도 고양경찰서가 중실화 혐의로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A씨는 긴급체포된 지 48시간 만에 유치장에서 풀려났다. A씨는 석방되면서 한국어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저유소가 있는 걸 몰랐냐는 질문에는 “예”라고만 답했다. A씨 석방에도 경찰 조치 자체가 과도했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중실화죄는 업무상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로 인해 공용 건조물이나 타인의 물건 등을 불에 태워 훼손한 사람에 대한 처벌 규정이다.

전문가들도 섣불리 스리랑카인에게 중실화 혐의를 묻기 어렵다고 봤다. 김재봉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실화 혐의가 적용될지, 안 될지 섣불리 단정하긴 어렵다”며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그렇게 중요한 시설이면 보호조치가 잘돼 있지 않겠나’라고 본다면 고의성을 묻기 어려울 수 있다. 또 스리랑카인이 이를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있었는지 등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감사에서도 저유소 안전 문제가 거론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산업통상자원부 국감에서 “인천은 민간 정유사가 보유한 저유소 240m 거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다”며 “도심에서 화재 사고가 났다면 큰 인명 피해가 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유소 시설의 안전 관리 업무가 여러 기관으로 나누어져 관리 부실 가능성도 지적됐다. 현재 저장탱크로 구성된 저유소는 소방청이, 연결된 송유관은 산업부가, 인근 건축물 규제 등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한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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