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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공동선언’ 韓·日 관계 새 가능성 열었다

입력 2018-10-07 19:15:01
1998년 10월 8일 일본 영빈관에서 국빈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오른쪽)이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역사적인 한·일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내외에 공표했다. 국민일보DB




1999년 3월 20일 저녁 청와대에서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1937∼2000) 일본 총리 부부를 위한 국빈만찬이 열렸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1924∼2009)은 환영사에서 5개월 전 도쿄에서 오부치 총리와 함께 제창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하 공동선언)에 대해 “한·일 양국 국민이 서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공동선언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자평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양국이 서로 오랫동안 마음을 닫고 있었다는 지적이자, 앞으로는 흉금을 터놓고 사귀는 관계가 돼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98년 10월 8일 양국 정상이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날로부터 20년, 지금 양국 관계는 김 전 대통령의 그 바람대로 전개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공동선언을 계기로 시작된 변화의 방향이 한·일 관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한·일 상호 인정시대 열려

지난 1일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과 동아시아 미래비전’을 주제로 서울에서 열린 국제 학술대회에서 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공동선언 이후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시작됐다”고 지적하고 “일본인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양국의 대등성 의식이 자연스럽게 발아됐다”고 말했다.

공동선언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서로에 대한 편견을 최소화하면서 맨얼굴을 마주대하기 시작한 결과다.

공동선언문에서 오부치 총리는 식민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말하며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과 민주화를 달성하고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한 데 대해 경의를 표했다. 이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전후 일본이 평화헌법 하에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수행해온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서로에 대한 긍정적 평가, 즉 상호 인정을 통한 신뢰의 틀이 마련된 것이다.

한·일 양국이 마음을 열고 서로에 대한 편견을 최소화하면서 맨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는 계기는 상호 문화 수용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공동선언의 실행 계획을 통해 단계적으로 시작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한국인들에게 일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제공했다. 동시에 한국 드라마, K팝 등이 일본인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럽게 양국의 상호 방문이 늘었다. 이해의 폭도 그만큼 확장되면서 ‘한류 붐’ ‘일류(日流) 붐’이 시작됐다.

좌절, 교류 확대에서 위축으로

공동선언 이후 몇 년 동안은 한·일 관계사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평온한 시기였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특히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자 양국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영토·역사·위안부 문제가 부각되면서 공동선언의 존재감은 크게 약화됐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정부가 적극 나서라는 대법원 판결과 함께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방문하는 등 대일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후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양국 간 교류도 시나브로 위축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양국의 교역 규모는 2012년 1080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로 돌아섰고, 만성적인 대일 무역 역조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인접 국가 간 교역 규모는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확대되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일 교역 규모 위축 추세는 심각한 퇴행이다.

양국 국민의 상호 방문은 겉으로 보면 꾸준히 늘어 지난해 945만명에 이르렀지만 내용적으로는 한국인 일본 방문이 714만명, 일본인 한국 방문이 231만명으로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일본인 한국 방문이 늘지 않는 것도 양국 관계 악화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관계 악화가 상대에 대한 관심 약화로 이어진다면 공동선언의 의미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다시 공동선언의 길로

다행인 것은 올 초부터 시작된 남북 해빙 무드가 북·미 간으로 이어지면서 역내의 비핵 평화 이슈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일 간 협력 필요성이 다시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서 거론한 국제 학술 세미나에서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유럽의 통합 경험을 소개하면서 “독일 통일을 이뤄냈던 구 서독의 동방정책이 오히려 서구 세계와의 긴밀한 협조 위에서 가능했던 것처럼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일본과의 협력관계 구축은 필수불가결하다”고 역설했다.

그렇듯 그간 좌절을 경험했던 공동선언은 다시 원래 목표를 위한 필요성으로서 부상하고 있다. 20년 전 한·일 관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상호 인정을 통한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제시했던 공동선언은 이제 평화 실현이라는 구체적 비전 위에서 제2의 공동선언을 요청하고 있다.

조용래 대기자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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