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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들 조국의 품으로 반드시 모시겠습니다”

입력 2018-10-04 04:05:01


국방부가 2일 취재진에게 공개한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지뢰제거 작전 현장. 남북 군 당국은 이 지역에 매설된 지뢰를 전날부터 제거키로 했다. 우리 군 관계자는 북한도 고지 뒤편에서 지뢰제거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철원=사진공동취재단


국군장병들이 2일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정상에서 지뢰탐지기를 들고 땅속에 묻혀 있는 지뢰를 찾고 있다. 최전방 비무장지대인 이 지역 지뢰 제거는 9월 평양공동선언 부속합의인 남북 군사 분야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며, 남북 유해 공동 발굴을 위한 사전 조치다.<기사 2면> 철원=사진공동취재단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 정전 직전까지 공방 치열
공기압축기·예초기 작업으로 조용하던 비무장지대 ‘굉음’
수색대대 장병들은 경계 작전, 기자도 5㎏ 방탄조끼에 헬멧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정상에서 공병들이 대열을 이룬 채 천천히 이동했다. 선두에 선 장병은 지뢰탐지기인 막대 모양의 ‘숀스테드’를 하키 채처럼 쥐고 지표면을 샅샅이 훑었다. 땅속 3m까지 묻힌 지뢰를 탐지할 수 있는 작업이다. 다른 장병 2명도 지뢰탐지기를 땅에 대고 뒤따랐다. 공기압축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기를 땅에 쏘아주거나 잡초를 제거하며 시야를 확보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했다. 평소 고요했던 비무장지대(DMZ)에서 귀를 찌르는 굉음이 끊이지 않았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국방부는 최전방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펼쳐지는 지뢰제거 작전 현장을 2일 언론에 공개했다. 이날 지뢰제거 작전이 진행된 곳은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1㎞ 떨어진 화살머리고지 정상의 경계소초(GP) 인근이다. 이곳에서 MDL을 향해 길이 800m, 폭 4m의 지뢰제거 구간을 만드는 작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 주변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기압축기와 예초기 소음으로 요란했다. 소총을 든 수색대대 장병들은 좌우를 번갈아 살피며 경계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현장 지휘관은 “민감도를 서로 다르게 설정해 놓은 지뢰탐지기로 두 세 차례 탐지한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 지뢰제거는 9월 평양공동선언 부속합의서로 채택된 군사 분야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남북이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하며 화기와 병력을 들여놓은 DMZ를 진짜 비무장지대로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다. 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이뤄지는 남북 유해 공동발굴을 위한 사전 조치다.

지뢰제거 작업은 화살머리고지 정상뿐 아니라 MDL로부터 500m 떨어진 지역에서도 실시된다. 이곳에는 길이 500m, 폭 10m 구간의 지뢰제거 지대가 늦어도 다음 달 말까지 만들어질 예정이다. 여기엔 땅을 파서 만든 도랑인 교통호가 있다. 6·25전쟁 당시 우리 군이 적의 공격을 피해 이동하던 이 교통호 주변에서 다수의 유해가 발굴될 것으로 예상된다.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선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전까지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이날 현장에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폭발물처리반(EOD) 요원들도 대기하고 있었지만 유해나 지뢰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남북 군 당국은 지난달 화살머리고지 일대 지뢰와 폭발물을 1일부터 제거키로 했다. 다만 화살머리고지 정상에서 MDL 너머로 보이는 북측 GP 주변에선 북한군의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었다. 군 관계자는 3일 “북한도 남북 합의에 따라 1일부터 지뢰제거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며 “북측 작업은 화살머리고지 뒤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맨눈으로 작업 진전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뢰제거와 함께 화살머리고지 일대에 길이 1.7㎞, 폭 12m의 도로를 연말까지 놓는 작업도 계획돼 있다. 도로 개설 후엔 유해 발굴을 위한 남북 공동사무소도 설치할 예정이다.

화살머리고지로 올라가는 길은 험하다. 8인승 전술차량에 탄 뒤 시속 10㎞ 안팎의 속력으로 7분간 비포장 산길을 올라 도착했다. 앞서 취재진은 5㎏가량의 방탄조끼에 방탄헬멧을 쓰고 통문 앞에서 대기했다. 통문은 MDL 이남 2㎞ 지점에 세 겹으로 쳐져 있는 철책의 출입문이다. DMZ의 남측 경계선이다. 통문 좌우측엔 멀리 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 우측 능선 뒤편에는 6·25전쟁 당시 격전이 벌어졌던 백마고지가 있다.

통문 근처 시설물엔 ‘선배님들의 숭고한 희생, 우리가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조국의 품으로 반드시 모시겠습니다’ ‘남북 공동 유해 발굴 완전작전’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평양선언 채택 후인 9월 말쯤 설치된 것이다. 이 지역 부대장은 “3개월 전부터 주변 지형을 정찰하며 이번 작전을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통문 가까이엔 정전협정 상황을 감독하는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소속 군인 2명이 나와 있었다. 이들은 지뢰제거 작전이 시작된 지난 1일부터 작전 완료 때까지 현장에 나와 통문을 통과하는 인원과 장비 등을 확인한다고 했다. 유엔사는 남북 합의에 의해 1일 시작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지뢰제거 작업에 대해 “정전협정의 정신과 최근 이뤄진 남북 간 포괄적인 합의에 따라 JSA에서 현재 진행 중인 지뢰 제거 작업을 승인했다”고 밝혔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전했다.

철원=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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