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과의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에 앞서 ‘종전선언은 비핵화 상응조치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북 예정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에게 종전선언 이상의 ‘카드’를 들고 오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향후 전개될 북·미 핵 협상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일 논평에서 “종전은 새로운 조·미(북·미) 관계 수립과 조선반도의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가장 기초적이고 선차적인 공정”이라며 “누가 누구에게 주는 선사품이 아니며, 우리의 비핵화 조치와 바꾸어먹을 수 있는 흥정물은 더더욱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종전을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도 구태여 이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을 앞두고 미국 내에서 종전선언 카드가 비핵화 상응조치로 언급되자 며칠 만에 북한이 이를 걷어찬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영변 핵시설을 ‘온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 핵 계획의 심장부와도 같은 핵심 시설’이라고 소개하며 미국에서 핵 계획 신고와 검증, 영변 핵시설 폐기 등의 대가로 종전선언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궤변”이라고 몰아세웠다. 영변 핵시설 폐기와 같은 본격적인 비핵화 과정에 돌입하려면 대북 제재 완화나 북·미 수교 같은 ‘빅딜’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종전선언이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폐기와 미군 유해 송환 등 북한이 이미 취한 ‘선의의 조치’에 대한 등가물일 뿐이며,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등가물은 대북 제재 완화나 북·미 관계 정상화라고 얘기한 것”이라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나 오스트리아 빈 협상 채널 등 북·미 접촉에 앞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이런 ‘강공’이 북·미 협상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2008년 6자회담도 검증의정서 작성 과정에서 깨져버렸다”며 “북한은 미국 주도의 일방적인 핵 사찰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해졌다”고 진단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종전선언을 비핵화 과정의 진입로로 평가해 왔는데, 종전선언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말은 진입로에 진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라며 “비핵화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말은 안 했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는 것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북한의 입장이 비핵화 협상 틀을 깨려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정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기존 입장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협상을 앞둔 전략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대북 소식통도 “북한이 중대결심을 하려 했다면 외무성 담화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리용호 외무상 등을 통해 입장을 냈을 것”이라며 “당 입장을 공식 발표하는 노동신문 대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입장을 낸 것도 대외 반응을 살피기 위한 ‘떠보기’ 차원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