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일 백두산 정상에 올라 굳게 잡은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는 것으로 2박3일의 평양 정상회담을 마무리했다. 훗날 남북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날로 평가될 이 장면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민족의 영산에서 남북 주도로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아침 백두산 천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장군봉에 도착해 “이제 첫걸음이 시작됐으니 이 걸음이 되풀이되면 남쪽 국민들도 백두산으로 관광 올 수 있는 시대가 곧 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분단 이후 남쪽에서는 백두산이 그저 바라만 보는 그리움의 산이 됐다”며 “오늘은 적은 인원이 왔지만 앞으로는 남측 사람들, 해외동포들이 와서 백두산을 봐야지요”라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백두산 천지에 새 역사의 모습을 담가서, 앞으로 북·남 간 새로운 역사를 또 써나가야겠다”고 강조했다. 남북 정상이 함께 백두산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백두산은 남북 모두에 의미가 깊다. 일단 김 위원장에게는 결단의 장소다. 그는 2012년 집권 후 중대 결정을 내리기 전 이곳을 찾았다. ‘백두혈통’을 내세우는 김일성 일가의 뿌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65년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장소다. 남북이 대립의 역사를 뒤로하고 평화 공존의 시대로 나아간다는 메시지를 발신하기에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국제사회에 백두산이라는 새로운 관광지를 알린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비핵화가 진전돼 남북 경제 협력이 재개되면 한때 논의됐던 백두산 관광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남북 정상 부부가 백두산에 선 그 장면만으로도 국제사회에 굉장히 감동이 있을 것”이라며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겠지만 두 정상에게 천지를 내어준 백두산 기운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서광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 수석의 설명대로 이날 백두산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미 대화가 교착된 상태에서 열렸다. 남북 관계 개선과 군사적 긴장 완화를 적극 추진하기엔 부담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 주도의 한반도 평화를 재확인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 위원장이 주변의 반대를 뒤로하고 서울 방문을 결정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남북은 1972년 첫 합의문서인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이래 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2000년대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더디지만 조금씩 평화 공존을 향해 나아갔다. 문 대통령 취임 후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은 이런 흐름을 가속하는 동시에 되돌릴 수 없는 흐름으로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