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외교·통일 분야 전문가들은 평양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20일 “한반도에서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남북 정상이 직접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동북아 안보 틀 전환에 시동을 걸었고, 미국 등 주변국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 조치, 연내 종전선언 여부에 따라 한반도에서 마지막 냉전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그런가 하면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라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도 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가 최대 격변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남북 관계가 근본적으로 이전의 적대 관계에서 벗어나 평화공존의 관계로 진입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연설한 것은 북한 주민 15만명을 상대로 평화공존을 약속한 상징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의 냉전구도 해체 과정이 완성 단계에 다 왔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한반도에서 획기적인 안보 패러다임 변화가 올 것”이라며 “연내 종전선언이 이뤄질 경우 이번 평양 정상회담은 단순한 국면 전환용의 의미를 넘어서게 된다”고 말했다.
홍 연구위원은 “평양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미국에서도 적극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며 “70년 넘게 지속돼 온 북방 삼각체계(북한·중국·러시아)와 남방 삼각체계(한국·미국·일본)의 대결 구도에 균열이 왔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러한 변화의 계기를 남북 정상이 주도적으로 마련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독일 통일의 경우 세계적인 탈냉전 흐름 속에서 이루어졌지만, 한반도에서는 당사자들이 직접 변화의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홍 연구위원은 “지금 구도는 남북이 지각변동을 만드는 핵심 축이고, 여기에 미국이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우리 안의 지렛대를 먼저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남북 정상회담 가운데 처음으로 비핵화를 의제로 삼았고, 합의문에도 그 내용을 담았다”며 “이미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은 시작됐다. 북한 비핵화에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 평화체제로 갈 것”이라고 낙관했다.
남북이 사실상 종전을 선언한 것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종전 협정은 현장에 있는 군 지휘관들이 하는 전술적 조치”라며 “이번 회담에서는 양측 정상이 자리한 가운데 군 수뇌부가 서명을 했다. 법적 효력을 갖는 종전 협정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진행돼온 선언적 수준의 종전 협정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남북 사이의 실질적인 군사적 긴장 완화는 북한 비핵화를 촉진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아직 한반도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보기는 이르다는 평가도 많다. 북·미 간에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이번 평양 정상회담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는 우려가 남아 있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라는 숙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평양 정상회담으로 최소한 남북 관계에서는 큰 전환이 일어났고 전쟁 없는 한반도가 시작됐다”면서도 “결국은 비핵화 문제가 진전돼야 남북 차원을 넘어선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도 “한반도 패러다임 전환의 전제조건은 북·미 간의 비핵화 진전”이라면서 “비핵화 협상에 성과가 없다면 평양 정상회담은 사상누각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남북 간의 종전선언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북·미 간의 실질적인 종전선언이 중요하다. 비핵화라는 전제조건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 평가하기는 이르다”고 했다.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아직 패러다임 전환까지 평가하기에는 이르다”면서도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에 나온 내용을 실행할 수 있는 조치들을 27년 만에 취했다는 점에서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판 이상헌 이형민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