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이후 처음으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서울에 온다. 남북 정상은 19일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예고했다. 하지만 북핵 문제와 종전선언을 둘러싼 남·북·미 간 복잡한 협상이 진행 중이라 시기와 형식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김 위원장 선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대한 화답 의미로 서울 방문을 약속했지만 끝내 지키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발표한 평양공동선언 제6항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적시했다. 단순한 구두 약속을 넘어 문서로 합의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김 위원장이 연내에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달에는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 한·미 정상회담 등의 일정이 잡혀 있어 사실상 방문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빠르게 방문 협의를 추진한다고 해도 10월 중순은 지나야 가능하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서울 방문이 전례 없는 파격임을 감안하면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준비를 마치기는 쉽지 않다. 특히 평양 주민에 대한 전면적 통제가 가능한 북한과 달리 우리는 우익·보수 세력의 반발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무엇보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서울 답방도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문 대통령은 오는 24일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김 위원장의 대미(對美)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회담 결과가 좋으면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이 이뤄지겠지만 반대일 경우 내년 이후로 늦춰질 수 있다.
정부가 김 위원장의 방문에 맞춰 트럼프 대통령을 서울로 초청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도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남북 및 북·미 협상이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같은 아이디어가 논의될 수도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추진되면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해진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함께 서울을 방문하려면 10월 말이 사실상 유일한 옵션이다. 하지만 이 역시 북·미 협상이 원만히 진행됐을 때 가능한 일이라 낙관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초청해 ‘2018 서울 종전선언’을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북한 정권 내부에서는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반대하는 기류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평양 고려호텔 브리핑에서 “통일전선부 주요 인사가 ‘서울 방문에 대해 주변에서 전부 다 반대했다. 이것은 완전히 김 위원장의 독자적 결정이었는데 (주변에서) 이를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며 “그만큼 우려가 큰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