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3차 정상회담에서 군사 분야 합의를 끌어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전 남북 정상회담 때보다 군사 분야 의제가 더욱 두드러진 모양새다. 군사 분야 합의는 불투명한 비핵화 논의에 비해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데다 비핵화 논의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프레스센터 브리핑을 통해 “우리는 전쟁 공포의 일상화에서 평화의 제도화로 전환하고 있다”고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불가역적이고 항구적인 평화”라고 강조했다.
평화의 제도화는 남북의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를 전제로 한다. 정부가 4·27 판문점 선언 이후 전쟁 위험을 해소하는 방안을 구체화하는 데 힘을 쏟은 이유다. 남북 군 당국은 전방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으며, 군 통신선을 복원하고 서해상 함정 간 교신을 재개했다. 한·미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등 일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유예하기도 했다. 이런 조치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 중단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비핵화 협의를 이어가는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현재 남과 북이 군사 분야 합의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번 정상회담 핵심 의제는 남북 관계 개선과 비핵화, 군사적 긴장 완화 세 가지다. 이 가운데 경제협력을 비롯한 남북 관계 개선은 대북 제재라는 명확한 한계를 안고 있다. 비핵화 논의는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예상하기 어렵다. 논의 진전을 끌어내더라도 북·미 간 협상을 위해 비밀에 부쳐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반면 군사적 긴장 완화는 이들 의제에 비해 명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동안 남북 군 당국이 실무회담을 통해 상당 부분 합의를 도출하기도 했다.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가 경협 사업의 기반을 닦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예컨대 비무장지대(DMZ) 내 경계소초(GP) 철수와 공동 유해 발굴은 해당 지역 지뢰 제거 작업이 이뤄진 뒤에야 추진 가능하다. 지뢰가 제거된 구간을 넓혀감으로써 앞으로 남북 도로와 철로를 잇는 사업의 토대를 만들어놓을 수 있다. 3번 국도를 남북으로 잇거나 서울∼원산 간 경원선 철도를 복원하는 사업이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경협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한 뒤 군사 문제를 풀어내는 게 아니라 군사 분야 의제를 먼저 치고 나가면서 더 높은 수준의 남북 관계 개선을 이끌어내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군사적 긴장 완화는 북한에 일정 수준의 체제안전 보장 장치를 제공해줌으로써 비핵화 논의를 촉진시키는 측면도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에서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키로 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미 합의된 남북 간 군사 분야 합의마저 밀어붙이지 못한다면 북한 비핵화를 끌어낼 명분 찾기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우여곡절 끝에 대화의 장으로 나온 북한이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돌이킬 수 없는 전쟁 위험 해소 장치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보수진영에선 군사 분야 합의가 지나치게 속도를 낼 경우 안보 불안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