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의 신뢰와 인내가 북한 비핵화 협상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상대방 자극을 자제한 북·미 정상의 콤비플레이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북·미 정상은 북한 정권 수립일인 9·9절 등 한반도 위기가 더욱 고조될 수 있는 상황을 평화 모드로 되돌렸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의 4차 방북을 취소한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이후 17일 만에 비핵화 협상은 또다시 극적인 변화를 맞았다.
한국 정부의 대북 특사단장을 맡았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꽉 막혔던 북·미 협상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기 시작했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이 지난 5일 대북 특사단을 만났을 때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발언을 신호탄으로 북·미 정상은 핑퐁처럼 덕담을 주고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김 위원장에게 감사하다. 우리는 (비핵화를) 함께 해낼 것”이라고 화답했다.
하이라이트는 9·9절 열병식이었다. 북한은 열병식에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무기를 공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열병식 직후 “김 위원장, 고맙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미 백악관은 10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한 친서 내용을 공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도 김 위원장을 다시 만나는 것에 열려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높아진 것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익명 고위 관리의 뉴욕타임스 칼럼 기고 파문과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의 신간 등 백악관의 치부가 연이어 폭로되면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대화를 탈출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해 북·미 대화에 적극적인 스탠스를 취하지만 선거 이후엔 입장이 돌변해 북한을 차갑게 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미국 주류 언론의 보도도 끊이지 않고 있다. NBC방송은 “미 당국이 확보한 가장 최신 정보에 따르면 김정은 정권은 핵 활동을 은폐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오고 있다”며 “미 정보기관은 북한이 올해 5∼8개의 새로운 핵무기를 생산했을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비핵화하겠다’는 김정은의 말을 믿는다”면서도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즉각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보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