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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래 칼럼] 한반도 대전환의 불씨 키워가려면

입력 2018-09-10 04:05:01


중국에 역할 맡겨서 적극 활용하도록 하고
한·일 관계도 한반도 분단 극복 차원에서 보강돼야
표피적 현상에 휩쓸리지도 않으면서 섣부른 판단 경계하고
더 크고 넓게 멀리 내다보는 지혜 절실하다


한국 현대사는 산업화·민주화 과정으로 흔히 요약되나 추가돼야 할 게 더 있다. 바로 분단 극복이다. 예컨대 1987년 민주항쟁 직후 민주화 세력을 중심으로 통일 논의가 고조됐다. 이에 호응하듯 노태우 대통령은 88년 7월 7일 ‘민족 자존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 선언)을 발표한다. 이른바 북방정책, 분단 극복을 위한 외교정책이다.

7·7 선언에서 한국은 더 이상 북한을 적대 상대로 보지 않으며, 남북 협력에도 적극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산가족 상봉, 남북 교역·협력, 동구권과 관계개선 등 6가지 실천방안도 처음 내놓았다. 이로써 남북 고위급회담(90), 소련과 수교(90), 남북 유엔 동시 가입(91), 중국과 수교(92) 등이 이뤄졌다.

선언은 93년 1차 북핵 위기로 동력을 잃었다. 그럼에도 선언의 비전과 방향은 이후 분단 극복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됐다. 올 들어 급반전되고 있는 한반도 상황은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단 있는 결단의 결과다. 여기에 7·7 선언의 경험과 실패도 반면교사로, 새 희망으로 작용했을 터다.

7·7 선언 30주년을 맞은 2018년 한반도 대전환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은 깊은 감동일 뿐 아니라 동시에 새로운 사명을 불러일으킨다. 한반도 대전환이 아직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그 불씨를 어떻게든 키워가야 하는 사명이다. 정부가 신북방정책과 신베를린 선언을 역설하는 배경도 바로 그것이다.

신북방정책은 7·7 선언의 새 버전이다. 기존 틀에 더하여 중국·러시아와 남북을 포함한 경제협력 및 교류의 틀을 새롭게 구상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신베를린 선언도 2000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에 근거를 둔다. 베를린 선언보다 ‘한반도 신경제 구상’ 등 구체적인 한반도 평화 구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신’ 선언이다.

신북방정책과 신베를린 선언은 과거 독일의 통일 구상인 동방정책과 매우 닮았다. 한반도 대전환의 불씨를 키워가자면 동방정책의 핵심 주장과 성과들을 꼼꼼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안에 답이 있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한국 대통령들이 굳이 독일에 가서 대북 선언이나 한반도 구상을 내놓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동방정책은 당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미·영·프 등 서방 국가들, 그리고 동독의 마음을 사는 데 주력했다. 독일이 재통일되더라도 결코 인접 국가들의 염려거리는 되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유럽의 번영과 평화공존은 강화되리란 믿음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이었다. 신북방정책과 한반도 신경제 구상도 중국과 러시아, 미국과 일본, 북한을 향해 펼쳐져야 한다.

지난 5일 열린 ‘국민일보 2018 국민경제포럼’(주제:‘한반도 대전환-평화를 넘어 경제통일로’)에서도 같은 주장이 쏟아졌다. 주제강연을 맡은 송영길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초대 위원장은 신북방정책으로서 중국, 러시아와 긴밀한 교류를 강조했다. 한반도 비핵화가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도 중·러와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종전선언과 관련해서도 중국을 배제하기보다 오히려 중국에 적극적인 역할을 맡기고 활용해야 옳다.

독일 통일사 연구자인 세노오 데쓰지 일본 센슈대 교수는, 독일의 동방정책은 미·영·프와 연대를 최우선하는 서방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지적한다(‘전후 서독 외교의 분수령-동방정책과 분단 극복의 전략’, 2011). 이렇게 보면 신북방정책도 정반대편인 미국·일본과의 연대, 즉 신남방정책에 좀 더 힘을 쏟을 때다.

한·미 관계는 중시돼 왔고 문 정부도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과의 관계는 여전히 원만치 못하다. 정부가 대북 특사 귀환 후 중국과 일본에 각각 특사를 보내 최근의 흐름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대응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제 한·일 협력은 한반도 분단 극복 차원에서 보강돼야 한다.

문제는 북한과의 경제 협력이다. 대북 제재 하에서는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제재가 풀리기 전이라도 경협에 필요한 비전과 지식의 공유를 비롯해 향후 북한이 국제교역 질서에 소프트랜딩 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를 미리 다지도록 하는 인적 및 정보 교류는 가능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제재 해제 후 경협 속도를 높이게 될 것이다.

한반도 대전환의 불씨를 키우는 일은 북한을 포함한 주변국의 협력을 얻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목표를 이루자면 표피적 현상에 휩쓸리지도 않으면서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고 더 크고 넓게 그리고 멀리 내다보는 지혜가 절실하다.

7·7 선언 30주년, 이번에야말로 한반도 대전환은 반드시 안착돼야 한다. 곧 열릴 3차 남북 정상회담도 그리 진행되기를 바란다.

조용래 대기자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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