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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찌른 흙수저 검객 한국 펜싱의 미래 오상욱

입력 2018-08-23 04:05:01
오상욱이 2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펜싱 사브르 개인전 준결승에서 15대 14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자카르타=윤성호 기자


한국 펜싱의 유망주에서 주인공으로, ‘훈남 펜서’ 오상욱(22)은 이번 대회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오상욱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사브르 결승에서 구본길을 만나 15대 14 단 한 점 차로 패하며 개인전을 마쳤다. 펜싱 대표팀의 막내는 베테랑 선배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으며 자신의 실력을 선보였다.

귀족 스포츠인 펜싱에서 은메달리스트가 된 오상욱은 ‘개룡남(개천에서 난 용)’이다. 국가대표 펜서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부유하지 않은 가정환경과 부모의 반대 등을 이겨내고 칼을 든 오상욱은 마침내 한국 펜싱계를 짊어지는 대들보가 됐다.

어린 시절 오상욱의 집안 형편은 썩 넉넉하지 않았다. 자동차 부품 판매업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의 평범한 가정 아래서 자란 오상욱이 마스크나 재킷 하나에 수십만원씩 하는 펜싱을 쉽게 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운이 따랐다. 대전시교육청은 펜싱 예산을 마련해 오상욱의 매봉중학교와 송촌고등학교에 장비를 적극 지원했다.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돕는 후원회 ‘운사모(운동을 사랑하는 모임)’에게 받은 월 20만원의 장학금도 큰 도움이 됐다. 오상욱의 아버지 오희랑(49)씨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주변 분들의 도움 덕분에 뒷받침 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오상욱은 현재 운사모의 회원이 돼 어려운 운동 후배들을 위해 후원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오상욱이 펜서가 되기까지는 은사인 박종한 매봉중 펜싱팀 감독의 역할이 컸다. 초등학생 때 펜싱을 접한 오상욱이 중학교에 올라가며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하려 하자 부모는 반대했다. 금전적 부담뿐만 아니라 비인기 종목의 선수로서 밟아야 할 고생길이 훤했기 때문이다. 오상욱을 아예 펜싱팀이 없는 중학교로 진학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오상욱의 재능을 알아본 박 감독은 부모를 적극 설득했다. 박 감독은 “상욱이에게 펜서로서의 가능성을 봤다. 다시 생각해보시라고 수차례 전화 드리며 펜싱을 권했다”고 전했다.

박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중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체격이 작은 편이었던 오상욱은 단숨에 에이스로 자라났다. 오상욱은 전국소년체육대회와 펜싱선수권대회 등 각종 대회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휩쓸며 전관왕에 올랐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사브르 최초의 고등학생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됐다.

펜서로서 오상욱의 강점은 192㎝의 큰 체격과 빼어난 순발력이다. 보통 키가 크면 속도는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오상욱은 키 작은 선수들만큼 빠르고 민첩하다. 체격에서 나오는 파워도 무시무시해서 외국 선수들에게는 ‘괴물’이라고 불린다. 박 감독은 “힘과 스피드를 두루 갖춘 앞으로 나오기 힘든 유형의 선수”라고 평가했다.

특유의 낙천적 성격도 장점이다. 웬만한 일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신력이 강하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몇 달간 오상욱은 각종 대회 초반에 탈락하며 예상치 못한 슬럼프를 겪었지만, 긍정적 마음가짐 덕분에 정작 큰 대회에 나가서는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오상욱은 23일 구본길 등과 함께 펜싱 사브르 단체전에 나가 금메달을 노린다. 개인전에서는 한 치의 양보 없이 경쟁한 펜싱 선후배지만, 이번에는 동료로서 같은 방향으로 칼날을 겨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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