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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에 밀렸던 그 선수, ‘金馬’에 도전

입력 2018-08-13 19:00:01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승마대표팀의 김혁(뒤)이 지난 6월 30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승마대회에 참가한 뒤 파트너 말 데가스를 타고 독일의 제시카 베른들 코치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혁 제공


김혁(23)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승마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4위에 오른 정유라에 밀려 5위로 탈락했다. 정유라는 경기 중 여러 차례 실수를 저질렀지만 감점 받지 않았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이는 특혜 선발 논란을 일으켰다.

앞서 김혁은 전년도 경북 상주에서 열린 전국승마대회에서 정유라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는 한국사회를 흔든 엄청난 후폭풍의 전조였다. 그 대회에서 2등을 한 정유라의 어머니 최순실은 결과에 분노한 나머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당시 경찰, 문화체육관광부 등을 동원해 채점자들을 조사하고 승마협회를 감사토록 하는 등 월권을 자행했다. 김혁의 우승과 아시안게임 탈락은 2년 전 전국을 강타한 ‘최순실 국정농단’의 시초가 된 셈이다.

김혁은 대표 선발전 탈락 이후 억울함에 한 달 동안 고삐를 놓았고 말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김혁은 13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승마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는데, 결국 다시 하고 싶어지더라”라며 “다음 번에는 확실하게 1등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김혁은 다짐대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하며 당당히 첫 태극마크를 달았고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김혁은 “4년 동안 열심히 준비했다.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어린 나이에 맞닥뜨린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승부욕 덕분이다. 김혁은 “어렸을 때부터 대회에서 1등을 하지 못하면 잠을 못 잤다”며 “국가대표 탈락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원동력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김혁은 하루 종일 6∼7마리의 말을 타며 승마 감각을 익혔다.

김혁은 2년 전부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열 한 살의 말 ‘월드 데가스’와 함께 호흡을 맞춰왔다. 김혁은 “데가스는 지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나를 믿고 따라준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김혁이 출전하는 마장마술은 승마 종목 중 예술성이 돋보이는 종목이다. 길이 60m, 너비 20m의 평탄한 마장에서 정해진 코스를 따라 연기를 펼치는데 말과 사람이 하나가 돼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김혁이 가장 자신 있는 기술은 발레를 하듯 리드미컬하게 제자리에서 턴을 하는 ‘피루엣’이다.

마장마술은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효자 종목이다. 한국은 1998 방콕아시안게임부터 5회 연속 단체전·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독점했다. 그만큼 우승해야 본전이라는 부담감이 적지 않다. 반면 이번 대표팀의 환경은 썩 좋지 않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된서리를 맞은 승마협회의 회장이 계속 바뀌며 행정 공백이 컸다. 승마대표팀이 아시안게임에 출전 못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악조건 속에서도 김혁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김혁은 “상황이 좋지 않지만, 협회와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 분들이 많이 도와줬다”며 “대표팀의 팀워크도 최상이다. 긴장하지 않고 잘 해내겠다”고 차분히 말했다. 김혁은 20일 마장마술 단체전을, 21일과 23일에는 개인 1차전·최종전을 치른다.

승마계 문제를 지적해온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비운의 선수였던 김혁의 아시안게임 출전과 메달 획득으로 승마 적폐청산의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우여곡절 끝에 먼 길을 온 김혁이 한국 승마의 간판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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