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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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영석] 슬픈 수중 타임캡슐

입력 2018-07-27 04:05:02


1975년 8월 전남 신안군 증도 인근 바다. 한 어부의 그물에 도자기 6점이 걸렸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어부는 마루 밑에 넣어두었다. 이듬해 동생이 발견하고 군청에 신고했다. 1984년까지 11차례에 걸쳐 발굴된 물품은 도자기 2만여점과 동전 800만개 등이다. 신안선은 1323년 일본행 원나라 무역선으로 풍랑에 침몰한 것으로 추정됐다. 1조원의 가치라는 설명과 함께 신안 보물선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국내 최초로 성공을 거둔 수중 발굴작업이다.

보물선으로 국내외가 시끌벅적하다. 콜롬비아는 최근 보물선 산호세호의 인양을 중단했다. 2015년 발견 이후 소유권과 인양 주체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된 탓이다. 산호세호는 1708년 콜롬비아 북부 카르타헤나 인근에서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 스페인 범선이다. 정확히는 전세가 불리하자 선장이 배를 폭파해 수장시켰다. 600명 선원 중 소수만이 생존했다. 배와 함께 수장된 보물은 최대 170억 달러어치(약 19조원)라고 한다. 역대 최대 규모다.

‘150조원 보물선’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한 기업이 1905년 침몰했다는 러시아 군함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150조원 가치의 금화와 금괴 5500상자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과거 많은 사람이 도전했다가 실패한 바로 그 배다. 보물 존재조차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관련 주가가 들썩이는 것을 보면 보물선의 위력이 대단하기는 하다.

비밀지도와 바다 모험, 보물 발견으로 이어지는 보물선 스토리는 어릴 적 로망이다. 당시 생활정보를 고스란히 담은 수중 타임캡슐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일확천금을 노리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감춘 일그러진 동화일지 모른다. 대부분 난파선이기에 침몰 순간 죽음 앞에 선 이들의 슬픔이 함께 수장돼 있다. 이를 바라보려는 우리의 노력은 부족하다. 상업적 발굴을 금지하는 국제 헌장에 가입돼 있지 않다. 제대로 된 수중문화재 보호 방안도 없다. 보물이 아닌 슬픈 수중 타임캡슐을 인양할 때다.

김영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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