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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전정희] 日 산간마을 두 목사 이야기

입력 2018-07-28 04:05:01


지난주 금요일. 일본 야마나시현 고후시 고후교회 홍창희 목사 부부가 고령의 한 일본인 목사 부부를 찾아나섰다. 며칠째 전화를 받지 않아 염려돼 직접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 일본인 목사는 ‘청계천 빈민의 성자’ 노무라 모토유키. 노무라 목사는 196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서울 청계천 등에서 빈민 구호와 선교 활동을 했으나 돌연 야마나시현의 깊은 산 야쓰가다케에 들어가 ‘베다니교회’를 세우고 한국과 연을 끊었다. 청계천변 판자촌이 강제 철거되자 도시 빈민들과 서해 남양만에 들어가 두레공동체를 꾸렸던 그였으나 사역지에서 벌어진 사기와 비신앙적 일들로 깊은 상처를 받아서였다. 그는 당시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이 너무 마음 아파 판자촌 탁아소 건립에 쓰라며 자신의 도쿄 집조차 팔아 우리를 도왔다.

2005년 무렵 노무라 목사는 이명박 서울시장 주도로 청계천이 개발되고 ‘개발 전과 후’의 사진이 필요했던 서울시의 요청에 따라 당시 찍었던 서울 사진을 기증하면서 한국 교계에도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그는 아마추어 사진애호가여서 서울 곳곳을 사진으로 찍어 소장하고 있었다. 그가 20여년 만에 한국을 다시 방문했을 때 빈민운동을 같이 했던 제정구 전 의원은 별세했고, 김진홍 목사는 보수 신앙인이 되어 뉴라이트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노무라 목사는 한국 재방문 이후 제 전 의원 추모식에는 필히 참석하고 있다.

그는 또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사람들에게 큰 죄를 지었다며 2012년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울 밑에 선 봉선화’ 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지금은 북한 기아 어린이 돕기에 기금을 보내고 있다. 2013년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에게 서울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이런 노무라 목사를 홍 목사 부부가 수시로 안부를 살핀다. “제 선교지에 이렇게 훌륭한 목사님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어쩌면 제가 이곳에 온 것이 선교의 빚을 갚으라는 명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고후교회는 1996년 사택 다다미방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3층 예배당 건물이 됐고 100여명이 출석한다. 일본에서는 대단한 성장이다.

2002년 이 교회에 출석한 후지와키 겐지씨는 25년간 계속해 왔던 진통제와 담배를 끊으며 중심 일꾼이 됐다. 고쓰보 사토미씨는 “이상한 종교 아닐까” 하는 우려를 가지고 양육반 과정을 마쳤다. ‘이해가 안 돼도 순종하고 유익이 없어도 순종하자’는 말씀을 알아듣는다. 야부키 마유미씨는 “사람들이 찬양이 계속될수록 모든 것이 다 녹아내린 듯이 행복한 얼굴로 변해가는 걸 보면서 나도 저 사람들 속에 들어가고 싶다고 한 것이 축복의 시작이었다”고 고백했다. 나카자와 레이코씨는 “성경 공부 마치고 밤길을 걸어 갈 때 사모님이 말없이 동행해주어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손바닥이 마비될 정도로 손뼉 치고, 통성 기도하는 한국식 예배 모습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사랑받고자 하는 간절함의 표현기디도 하다.

홍 목사는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데 정작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위로받지 못해 병으로 굳어진 경우를 접하게 되더라”며 “노무라 목사님 시대 한국 사람들은 가난으로 인한 상처였다면 오늘 여기는 마음의 안식을 얻지 못해 상처받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기독교 진리는 구원과 위로다. 우리는 1885년 기독교 전래 이래 100여년간 외국의 선교사들로부터 구원의 메시지를 듣고, 또 위로받으며 살아 왔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 159개 국가에 2만10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복음 수출국가가 됐다. 이 복음의 네트워크는 국가 인종 이념 빈부를 넘어선다.

노무라 목사는 판자촌에서 가난해 병원도 가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둘러업고 뛰었다. 홍 목사는 일본의 우울증 환자 등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한다. 우리는 국적을 떠나 예수 사랑 안에서 서로에게 사랑의 빚을 졌다. 한데 언젠가부터 이 빚을 갚으려 하지 않고 탐욕을 부리면서 아름다운 공동체 교회가 휘청거리고 있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종교2부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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