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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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새파란 광장

입력 2018-07-25 04:05:01


자살한 사람의 80%는 치료와 관계없이 정신건강 관련 질환을 앓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반대로 자살한 사람의 20%는 정신과서 치료받을 만한 문제가 없는데도 그런 선택을 했다는 의미다. 몇 년 전 통계이므로 심리부검이 점점 활성화되면 자살 원인에 대한 새로운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심리부검이란 자살 시도자가 아니라 실제 자살자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원인을 밝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직접 질문할 수 없으니 최고의 방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서울 지하철 선정릉역의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생길 때 방문을 했고 이후 유가족들에게 권해주기도 했지만 다들 심리부검이라는 단어를 생소해했고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아했다.

지난 23일 최인훈 소설가의 영면 소식을 듣고 걸작인 ‘광장’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처음 읽었던 십대 시절에도 결말이 안타까웠다. 개인으로서 사랑하고 일하며 살고 싶었던 주인공 이명준의 꿈은 이념의 희생양이 된다. 그는 남한과 북한의 이데올로기 어디에도 정착 못하고 중립국을 택한다. 하지만 그가 뛰어든 바다는 다수의 광장인 동시에 개인적 밀실이 아니었을까. 그 어떤 선택도 그동안 꿈을 계속 지킬 수 없다는 막다른 골목에서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나는 소설 앞부분에서 훨씬 더 큰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더 큰 어려움과 싸워놓고선 그런 선택했다는 사실이, 그의 생각에 동조하느냐에 관계없이 슬펐다.

문학적인 감수성이 충만했던 십대 시절보다도 지금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라는 직업 탓에 자살 이야기만 나와도 긴장이 되고, 어떻게든 막아야만 하는 것, 풀어야만 하는 숙제로 생각하게 됐다. 그것이 정신과적 질병과 관계가 있든 없든 말이다. 갈매기의 환영이 지나고 중립국에서의 삶도 새로운 의미는 있었을 것이다. 시대의 희생양에게도 시대가 주는, 가족이 주는 선물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마다 삶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바다에 뛰어든 그 결말이 아쉬워지는 오늘이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알아도 미래를 알 수 없다.

하주원(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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