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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한승주] 크로아티아의 기적

입력 2018-07-24 04:10:01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도착한 것은 7월 첫날이다. 우리에게는 TV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를 통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동유럽 국가로 알려진 곳이다. 일주일 남짓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동화 속 풍경 같은 자그레브도, 눈부신 바다와 주황색 지붕이 어우러진 두브로브니크도 아니다. 자그레브의 반 옐라치치 광장에 모인 사람들, 그들의 뜨거운 함성과 흥분된 얼굴이다.

2018 러시아월드컵 크로아티아와 덴마크의 16강전. 현지시각 오후 8시 경기였지만 낮부터 빨간색과 흰색 체크무늬 크로아티아 축구팀 유니폼을 입은 시민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광장은 물론 골목마다 대형 TV가 설치됐다. 도시 전체가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2002 한일월드컵을 떠올리게 하는 열기였다. 시작한 지 1분도 안 돼 덴마크에 한 골을 내주자 거리엔 깊은 탄식이 흘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만회골이 나오자 폭죽과 환호가 터졌다. 연장전을 거쳐 승부차기까지 간 접전. 골키퍼의 선방으로 8강행이 확정되자 온 도시가 떠나갈 듯 함성이 쏟아졌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는 동안 월드컵 16강전과 8강전이 이어졌고 매 경기 현지인과 관광객이 함께한 뜨거운 응원전이 계속됐다. 지난겨울 비행기 티켓을 끊을 때만 해도 예상치 못한 월드컵 여행이 된 셈이다. 그러니 결승전에 오른 크로아티아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크로아티아는 결승전에서 정말 줄기차게 달렸다. 이미 16강전, 8강전, 4강전을 연달아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터라 체력적으로 지칠 만도 한데 프랑스보다 더 열심히 뛰었다. 동료가 공을 빼앗기면 비난하는 대신 지친 동료의 부족한 공간을 메우려 했다. 팀원을 믿고 내가 좀 더 뛰자는 자세, 개인기보다는 조직력을 앞세운 ‘원 팀(one team)’ 전략이었다. 포기할 만도 한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결승전에서 보여준 열정과 투혼은 인상적이었다.

서울의 절반도 안 되는 인구(416만명), 한반도 4분의 1 면적의 작은 나라가 기적 같은 준우승을 이룬 것이다. 박지성 SBS 해설위원은 “크로아티아는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매력적인 축구를 보여준 팀”이라며 “정신력 자세 경기력까지 모두 완벽했다”고 평했다.

오랜 세월 외세의 지배를 받아온 크로아티아는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한 신생 국가다. 독립 후에도 수년간 전쟁과 내전을 겪었다. 아직도 여행지 곳곳에서 외벽에 총탄 자국이 난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월드컵 골든볼(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한 크로아티아 주장 루카 모드리치(33)를 비롯한 고참 선수 대부분이 어린 시절 참혹한 전쟁을 겪었다. 모드리치는 6살 때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으로 할아버지를 잃고 부모와 함께 피란처를 전전했다. 꼬마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꿋꿋이 축구 연습을 했다. 축구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모드리치는 “크로아티아의 기적을 이해하려면 전쟁의 상처를 알아야 한다”며 “전쟁을 겪으며 우리는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결승전 후 갑자기 내린 폭우 속에서 콜린다 그라바르 키타로비치 크로아티아 여성 대통령이 경기에 진 선수들을 일일이 꼭 안고 다독이는 장면도 남다르게 보였다. 특히 모드리치를 안을 때 의연하던 대통령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모습은 뭉클했다. 전쟁을 겪은 선수와 국민들의 간절함이 결승 진출이라는 기적을 일궈냈기 때문이리라.

크로아티아의 ‘월드컵 동화’는 막을 내렸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올 시간. 하지만 크로아티아가 남긴 교훈은 한국 축구와 우리 사회에 오래 기억되었으면 한다. 뛰어난 스타플레이어 몇 명의 활약보다 평범한 여러 명의 조직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 동료를 믿고 내가 조금 희생한다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축구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서로를 믿는 우리가 있다면 4년 후 기적의 주인공은 우리가 될 수 있다.

한승주 편집국 부국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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