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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홍관희] 종전선언, 안보 파탄 부른다

입력 2018-07-23 04:05:01


북한이 미군 유해 송환 문제를 다루려는 7·12 북·미판문점 회담을 ‘노쇼’로 파기한 후, 유엔사령부와의 장성급 회담을 역제안해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개최토록 한 것은 미국과 종전선언을 논의하기 위한 노림수였다. 장성급 회담이 역사적으로 정전협정과 관련된 군사 문제를 주로 논의해 왔다는 점에서 회담의 귀추가 주목됐으나 미국이 유해 송환에 의제를 국한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현재 북한에 있는 5300구의 유해 확인에만 수년이 걸린다니 유해 송환을 비핵화 지연 전술로 삼으려는 북한의 전략이 성공할 개연성이 높고, 이제 북핵 협상은 해결이 요원한 장기화의 길로 들어섰다고 봐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비핵화의 시간과 속도에 제한이 없다며 서두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북한 핵 개발의 궁극적 목표는 북한 주도의 한반도 공산화(주체사상화) 통일에 있다는 게 국제사회 안보 전문가들 사이의 정설이다. ‘체제안전 보장’은 이를 은폐하려는 선전 구호이며, 한·미동맹을 해체해 최종 통일에 이르기 위한 중간 단계일 뿐이다. 이런 북한의 전략 구도 속에서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목이며, 결국 미군 철수와 유엔사 해체를 통해 한국의 안보 체제를 무력화하려는 게 북한의 숨은 의도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가 증언했듯 김정은은 필요하다면 남한을 향해 핵무기를 능히 사용할 수 있는 무자비한 인물이다.

6·12 북·미 회담 이후 핵 보유의 기정사실화, 한·미 연합훈련 중단 등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북한은 종전선언을 위한 총력 선동에 나서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등 선전매체를 동원해 종전선언을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선차적 요소’라고 강변한다. 6·25전쟁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며, 종전선언에 이은 평화협정의 연내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다행히 미국이 ‘선 비핵화, 후 종전선언’ 입장을 밝히고 있어 우리에겐 큰 위안이다. 그런데 종전선언을 앞장서서 막아내야 할 문재인정부가 이를 적극 추진하는 이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충격적인 것은 문재인정부가 9월 유엔총회에 맞춰 남·북·미 정상의 뉴욕 회동과 종전선언 방안을 미국 측에 제의했으나 미국이 북한의 신뢰성 문제를 들어 거절했다는 소식이다.

미 국무부가 아직은 한반도 전략에서 최소한의 합리성을 견지하고 있어 다행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인 성격을 감안할 때 안심할 수 없다. 지난주 미·러 정상회담에서 보인 트럼프의 대외 인식은 미국의 한반도 전략의 미래에 강한 회의를 갖게 한다. 그는 유럽연합(EU)을 적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2016년 대선에의 러시아 개입 문제를 놓고 미 국가기관의 판단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말에 더 신뢰를 표함으로써 국내에서 반역이라는 전례 없는 비판에 직면했다.

한때 강렬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비핵화 달성 의지는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 이후 현저히 약화됐다. 동맹의 이념적 기초인 자유민주·인권에 대한 강조보다 김정은의 아부 외교와 살라미 전술이 제공하는 작은 전리품에 집착하는 듯하다. 세기의 독재자 김정은을 “재능 있는 지도자”로 치켜세우는가 하면 “더 이상 북핵 위협은 없다”는 위험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11월 중간선거 이후 대북 비핵화 압박이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도 있긴 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혼선이 이어지는 가운데 문재인정부의 각종 군사훈련 중단 등 일방적인 군축 조치에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문재인정부의 북한 편향 자세가 대한민국의 국가안보, 국가이익에서 일탈해 있다는 점이 현 안보 위기의 본질이며, 그 핵심은 김정은의 거짓 비핵화 의지를 문재인정부가 전폭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이 하루빨리 평화 착시에서 깨어나 문재인정부의 남북공조 독주를 견제하지 않는 한 안보 파탄은 피할 수 없다. 앞으로 종전선언을 막을 수 있느냐가 국가안보의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다.

홍관희(성균관대 초빙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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