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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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김태용] 여름의 맛

입력 2018-07-23 04:05:01


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열대야 속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날씨 이야기를 하고 여름 건강에 대한 안부를 주고받는다. 매년 겪는 여름이지만 이전보다 더 뜨겁고 후텁지근하게 느끼고, 몇 십 년 만에 최고 더위라는 말이 으레 들려온다.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기온이 상승하고 이상 기후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나 별다른 도리가 없어 보인다. 자연에 순응하는 동물적 인간으로 돌아가 그늘과 인공 바람을 찾아가게 된다. 더위에 순응할 수밖에 없으니 계절에 맞는 음식을 먹고 잠시나마 여름의 맛을 느끼려고 한다. 어릴 때는 몰랐던 제철 음식을 먹는 기쁨이 나이 듦의 소확행(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중 하나다.

얼마 전 가족과 강원도 홍천을 지나가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과 임시 좌판들을 보면서 여름이 왔음을 새삼 실감했다. 옥수수를 사면서 좌판 할머니에게 옥수수수염을 가져가도 되냐고 아내가 물었다. 할머니는 무슨 약이고, 어디에 좋고를 혼잣말 비슷하게 하면서 함께 옥수수수염을 골랐다. 옥수수를 먹으며 어느 여름 솥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과 냄새, 엄마의 심부름으로 ‘신화당’이라는 감미료를 사러 가던 골목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 기억 역시 매년 여름 옥수수를 먹으며 떠올린 것도 같다.

계절은 반복되고 일상도 반복되니 자연스럽게 추억도 반복된다. 하지만 기억할 때마다 추억의 빛깔은 조금씩 변형된다. 추억이 변형되면 일상도 어느새 달라진다. 며칠 뒤 말린 옥수수수염을 차로 우려냈다. 옥수수보다 옥수수수염차가 더 맛있다고 딸이 말했다. 옥수수아이스크림의 겉에 달라붙어 있는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맛에 대한 설명은 때로는 너무 구체적이어서 오히려 추상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맛이 언어로 기억에 각인되는 순간이다. 아내의 약으로 마련했지만 어쩌면 딸은 옥수수가 아닌 옥수수수염차로 여름의 맛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엄마에 대한 기억까지 따라 올 것이다. 올여름은 분명 작년 여름과 다르다.

김태용(소설가·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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