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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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영석] 플라스틱 인류세

입력 2018-07-21 04:05:01


오존층 구멍을 발견해 1995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2000년 2월 멕시코에서 열린 지구환경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충적세(沖積世)가 아니라 인류세(人類世))에 살고 있다.” 가장 최근 빙하기가 끝난 1만1000여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는 지질시대인 충적세와 지금의 지구는 반드시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인류가 초래한 전 지구적 변화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노(老) 과학자의 경고로 여겼지만, 최근 과학계는 진지하게 인류세 도입을 검토 중이다.

크뤼천은 인류의 무분별한 자원 이용에서 인류세 등장의 원인을 찾고 있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라는 생물학적 변화도 주요 요인이다. 이로 인한 생태계 파괴로 지구 온난화 등 이상 기후와 미세먼지라는 만성질환이 유발되고 있다고 봤다. 인류가 화산 폭발이나 빙하 못지않은 엄청난 물리적 위협이 된 셈이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핵실험이 단행된 1945년을 시작점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후 플라스틱, 알루미늄, 콘크리트 등 기술화석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물질이 퇴적층에 쌓이기 시작했다. 사상 유례 없는 속도다. 지난 20년 동안 생산된 콘크리트는 500억t으로, 지구 표면 1㎡당 1㎏씩 덮는 양이다. 플라스틱은 연간 3억t이 생산되는데 그 무게는 전 세계 70억 인구를 합친 것과 맞먹는다. 본류에서 벗어났지만 한 해 600억 마리가 소비되는 닭고기의 뼈를 인류세의 최대 지질학적 특징으로 꼽기도 한다. 미래학자들은 지구생물의 6차 대멸종이 자연의 힘이 아니라 지구의 주인인 인간에 의해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세의 개념에서 알 수 있듯 인류가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영국은 이르면 내년부터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할 계획이다. 스타벅스도 2020년까지 전 세계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시키기로 했다. 한국은 국민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이 세계 1위다. 일회용 플라스틱 퇴출 운동이 확산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미흡하다. 국가가 나서야 더 큰 효과를 본다. 플라스틱 빨대를 일회용품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는 자원재활용법을 개정하는 등 입법 미비부터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김영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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