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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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김철오] 이방인

입력 2018-07-21 04:05:01

 
김철오 기자


노인은 한밤중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제주도 남부의 해안길을 따라 걸어왔다. 좁은 어깨에 얼룩진 민소매 셔츠를 걸쳐 입고 메마른 발을 슬리퍼에 끼워 넣은 허름한 행색이 보인 건 스무 걸음쯤 앞으로 다가왔을 때였다. 열 걸음 더 다가오니 구릿빛 피부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외국인이었다.

등대처럼 밤길을 외롭게 밝히는 구멍가게. 그 앞마당 탁자는 느긋한 여행자들이 한바탕 떠들고 지나간 흔적으로 가득했다. 구겨진 캔과 먹다 남긴 주전부리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노인은 남은 과자를 한 움큼 집어 먹고선 캔을 하나씩 흔들어 내용물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중 찰랑 소리를 낸 하나를 골라 입으로 털어 넣었다.

“퉤!” 노인은 눈을 질끈 감고 음료를 뱉었다. 캔 안에 담배꽁초 같은 것이 들어 있었을 테다. 그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점원에게 따져 물었다. 남에게 탓할 상황이 아닌데, 그저 하루 종일 투정 부릴 기회만 엿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점원은 노인과 비슷한 피부색을 가진 젊은 외국인이었다. 이들은 한국어나 영어가 아닌 생소한 말로 대화했다.

점원은 침착했다. 주눅이 들거나 화를 내지 않고 노인을 바라보며 한두 마디씩 대꾸했다. 노인은 잠시 뒤 나타난 한국인 사장에게 눈치가 보였는지 손을 무심하게 휙 들어 점원에게 인사하고 나갔다. 그렇게 해안길의 어둠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물건값을 건네며 점원의 국적을 물었다. 예상대로 그는 예멘인이었다. 노인과 주고받은 말은 아랍어라고 했다. 휴가 첫날인 지난 2일 밤 제주도 서귀포의 한적한 바닷가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다가오는 태풍으로 밤하늘의 별빛마저 가려진 낯선 어둠과 그 안에서 익숙하게 살고 있는 두 ‘이방인’이었다.

2015년 3월 내전이 일어났다. 정부군과 반군이 아니면 양쪽 모두의 적이다. 알카에다까지 끼어들어 총구를 들이밀고 선택을 묻는다. 무엇을 선택하든 둘 중 하나다. 삶이거나 죽음이거나. 그 사선(死線)에 놓이지 않는 길은 그들 모두를 피해 달아나는 것뿐이다. 예멘인 200만명은 그렇게 조국을 떠나 이방인이 됐다.

주변국과 유럽은 예멘 난민에게 문을 열지 않았다. 결국 국제인권단체에 설득된 말레이시아가 이들을 수용했다. 하지만 내전이 끝나길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말레이시아는 법을 개정해 이들의 체류기간을 3개월로 줄였다. 그 안에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한 예멘인은 다음 행선지를 찾거나 조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예멘 난민이 새롭게 발견한 곳은 제주였다.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무비자 입국심사를 시행했던 제주의 빈틈은 이들에게 기회였다. 제주의 에멘 난민 중 상당수는 말레이시아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예멘인의 무비자 입국이 금지됐다.

한국은 예멘 난민을 수용할 준비된 나라가 아니었다.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넘어오는 탈북자, 종교의 자유를 찾아 들어온 중국인 선교사 정도가 한국에서 수용할 수 있는 난민의 전부였다. 대규모 난민을 받아들인 적은 없었다. 한국은 고작 수백명의 예멘 난민을 감당하지 못하고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경쟁사회에서 학습된 이기심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몫을 좀 덜어 난민에게 나눌 관용을 사치쯤으로 몰아세웠다. 남녀 갈등을 먹고 자란 혐오주의는 난민을 새로운 먹잇감으로 삼아 편협한 순혈주의를 다시 길러냈다. 이 틈에 박애는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위선으로 여겨졌다. ‘제주 무비자 입국 전면 폐지와 난민 허가 중단'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70만건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국민청원 사상 최다 기록이다.

난민을 외면했던 인류의 양심을 깨운 사건이 있었다. 2015년 9월 2일 아침, 터키 휴양지 보드럼 해변에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이 파도에 밀려왔을 때 유럽은 굳게 닫았던 문을 열었다. 죄책감에 휩싸인 국제사회는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그때 우리도 쿠르디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잊지 않겠다’고.

3년 뒤 찾아온 예멘 난민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쿠르디를 떠올리지 않는다. 한껏 멋을 내고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제주의 예멘인에게 ‘난민답지 않다'며 행색을 지적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망각은 배려심이 깊은 듯하면서 때로는 매정하게 표정을 바꿔 지나간 시간을 비웃는다.

숙소를 떠나면서 예멘인 점원이 있던 구멍가게에 들렀다. 한국인 사장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점원은 원래 일했던 인근 농가로 돌아갔다고 한다. 마을의 인심을 얻어 부족한 일손을 틈틈이 돕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노인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지금도 노인과 같은 이방인들은 세상의 어둠 속을 고단하게 유랑하고 있다.

김철오 온라인뉴스부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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