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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영석] 마리안

입력 2018-07-12 04:05:02


프랑스를 생각하면 많은 이들이 에펠탑 또는 잔다르크를 떠올리게 된다. 근데 프랑스에는 공식 상징이 있다. 마리안(Marianne)이라는 여성이다. 1848년 2월 혁명 때 공식 상징으로 채택된 그녀의 흉상은 3만6000여 곳의 관공서 입구에 세워져 있다. 1999년 9월부턴 정부공식 문양에도 등장한다. 자유와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의 가치를 나타내는 그녀는 가상 인물이다.

마리안의 모습이 구체화된 것은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프랑스 혁명을 토대로 1830년에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통해서다. 왼손에는 장총, 오른손에는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를 들고 혁명을 독려하는 자유의 여신이 형상화됐다. 호전적인 아마존족 여인처럼 노출된 가슴은 항상 논쟁거리가 되곤 했다. 19세기 말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는 선물로 귀스타프 에펠이 설계해 보낸 뉴욕 자유의 여신상도 마리안상의 일종이다. 마리안이란 이름은 혁명 당시 프랑스 여성들이 가장 흔하게 사용했던 마리(Marie)와 안(Anne)을 합친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2015년 130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리 연쇄 테러 당시 레퓌블리크(공화국) 광장의 마리안 동상에는 200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다녀가기도 했다. 2010년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가 지속적 성장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홍보하는 포스터에 마리안의 임신한 모습을 등장시켰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프랑스는 오는 9월부터 초등학교에서 마리안을 가르치도록 최근 결정했다. 이처럼 자유와 평등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에서조차 현재 여성들이 누리고 있는 권리는 오랜 투쟁의 산물이다. 2차 세계대전이 지나서야 여성 참정권을 완전히 보장했다. 우리나라에선 미투 운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열기는 식어가고 있다. 미투 운동이 여성들의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선 안 된다. 우리의 딸들이 성적 자기 결정권과 책임에 대해 충분히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미투 운동의 선봉에 서 있는 대한민국의 마리안들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김영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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